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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이 기가 막히다. 이렇게 잘 지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영어 제목을 보니 '황금 실' 정도로 번역이 될 텐데, 전체 내용을 보면 번역자가 '총보다 강한 실'이라는 제목으로 한 번역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총은 인류를 강하게 만들었다. 다른 동물들 위에 서게 만들었다. 총으로 인류는 자신을 보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절멸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다른 동물뿐이랴. 총으로 인류를 절멸시킬 수도 있게 되었으니.
그만큼 총은 보호 기능보다도 더 파괴 기능이 앞선다.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으면 사용하고 싶어지기 마련.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그러니 총은 인류가 발명하여 사용한 물건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물건에 속한다. 총이 더 발전하여 대포, 폭탄, 지금 핵폭탄까지... 다 총이라고 지칭해도 된다.
하지만 실은 반대다. 실도 역시 인류를 강하게 만들었다.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여 추위에도, 더위에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극한에서 살아남도록 고안된 실도 많다. 그 실로 옷을 만들고, 옷 덕분에 인간은 우주 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다 실 덕분이다.
이렇게 실은 파괴 기능보다도 보호 기능이 앞선다. 그래서 실은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하다. 꼭 필요한 존재가 실임에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이 책 앞부분에서 실은 태고적부터, 즉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었음을 유물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럼에도 실은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초기에는... 미라를 발굴했을 때 그 미라를 감싸고 있던 천은 미라를 연구하는데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버려지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 천으로 미라를 감쌌기에, 또 천에 많은 기록을 남겼기에 인류는 아주 오래된 과거를 기억할 수 있었다. 천은 그만큼 중요하다. 물론 천은 실로 만드니, 실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고, 그 중요성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고대 실에 관한 이야기에서 비단으로 넘어가고, 비단을 중심으로 교역이 이루어지는 실크로드, 그리고 대양을 누볐던 - 이 책에는 콜럼버스보다도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바이킹들이 도달해서 살았다는 주장도 나와 있다 - 바이킹들의 돛. 또 양모를 통한 영국의 옷감들, 화려하게 장식한 레이스들. 미국에서 벌어졌던 노예를 이용한 목화 경작들.
이 부분까지는 조금 따분할 수도 있다. 너무 먼 과거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우리 흥미에서 다소 먼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우리 삶에서 가까운, 또는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그런 환경에서 옷은 얼마나 중요한가?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생존으로 사람을 이끄는 실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극한 상황은 우주로까지 확장된다.
우주복... 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옷이니 당연히 실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주복은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다. 이 우주복에 얽힌 이야기. 재미뿐만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게도 한다.
우리는 지금 화성에까지 가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화성에 가기 위해선 우주선도 중요하지만 우주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우리 생존에 필수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고, 그런 우주복을 만들기 위한 실에 관한 과학,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우주복뿐이 아니라 스포츠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실을 보라. 스포츠 의류, 또는 신발 등은 획기적인 발전을 했다. 인간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주는 역할도 실이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실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인공 섬유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온갖 화학제품에 노출된 사람들이 고통을 받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 레이온이라는 이름이 지금은 낯설지만, 우리나라에도 '원진 레이온'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많은 산업재해를 일으켰던 기업. 지금은 다른 나라로 이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레이온을 생산하는 공장에 대해서는 알기가 쉽지 않은데...
실이 보호 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실에는 파괴 기능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이 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천연 -> 인공 -> 천연'으로 회귀하고 있다.
여기에 총과 대비되는 실, 즉 거미줄로 만들어진 의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총알을 막을 수 있을 정도라고도 하지만, 아직은 실제 생활에서 쓰이지 못하고 있는 거미줄로 만든 옷들. 지금까지는 박물관에나 보관되는 상태라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천연에서 얻은 실로 인간을 잘 보호할 수 있게 될 날이 먼 미래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실은 총보다 강하다. 실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 실이 지닌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책. 저자가 말한 대로 호기심이 강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다고.. 하지만 실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 호기심만큼이나 우리 삶에 중요한 역할을 실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실이 우리들 삶에 가장 중요한 존재였음을...
덧글
이런 역사를 다룬 책에서 가끔 오타가 나오는데...
109쪽. 둔황 석굴과 관련해서 아우렐 스타인 이야기 중에... 1990년 12월 18일 스타인은 단단 윌릭 유적지에 도착했다고 되어 있는데...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1900년이라고 나와 있으니, 아마도 1900년의 오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