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와서 살아가면서,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고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서 자신에게 덧씌워진 온갖 습속들로 인해, 고집만 더욱 세지고, 자신만 알게 되어 오히려 세상이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진다고 느끼지 않을까?

 

  세상은 진보한다고 하는데, 진보라는 말과 다르게 삶에 대한 통제가 더욱 많아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알면 알수록 오히려 지식이 힘이 되고, 지식이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해야 하는데, 그와 반대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데 이것이 개인의 앎에만 해당할까?

 

그렇지 않다. 진보라는 말에 과학기술을 포함한 앎의 발전이라는 말도 들어있다면, 세상 지식 총량은 늘고 있는데, 우리들 삶은 더욱 옭죔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지식의 총체들이 우리들의 시각을 굴절시키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관점으로 보고,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세상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인권'도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또 많은 것을 알아가면서 오히려 '있는 그대로'에서 점점 멀어져, 내 삶이 행복에서 더 멀어지고, 사회 역시 그 많은 지식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정말로 내 삶에서 많이도 멀어졌다는 생각을 하는데... 손택수 시집을 읽다가 '있는 그대로, 라는 말'을 읽고 아, 그렇지! 하고 감탄하게 됐다.

 

   있는 그대로, 라는 말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있는 그대로더라

나이테를 보면서 연못의 파문을, 지문을,

턴테이블을, 높은음자리표와 자전거 바퀴를

연상하는 것도 좋으나

그도 결국은

나이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

누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평화 없이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도 없지

나무와 풀과 새의 있는 그대로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나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나의 공부는 모두 외면을 위한 것이었는지

있는 그대로, 참으로

아득하기만 한 말

 

손택수,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 창비. 2020년.15쪽.

 

그래, 나에게 씌워졌던 많은 것들을 걷어내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내 주변에 있는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 그래서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있는 그대로'라는 말에는 자신을 먼저 내려놓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부터 시작해서 온갖 습속들을 걷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나 아닌 존재들을 내 관점이 아니라 그들 존재 자체로 먼저 볼 수 있는 눈, 마음. 그런 마음들이 대다수를 이룬 사회라면 수많은 갈등들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손택수, 이번 시집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에는 이 시 말고도 여러 가지 생각할 것들이 많은 시들이 실려 있어서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