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들 - 존 버거의 예술가론
존 버거 지음, 톰 오버턴 엮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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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글들이 많다. 마음에 새겨둘 만한 구절도 많고. 존 버거. 뒤늦게 안 사람이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틈나는 대로 버거가 쓴 책이 번역된 번역본을 구하거나 빌려서 읽고 있는 중인데...


이 책 [초상들]은 방대한 책이다. 버거의 글들을 관련있는 내용들로 모아 엮어놓은 책이다. 그러니 다른 책에 나온 글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예술가들을 태어난 순서대로 실었기 때문에, 예술가로 본 미술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다만, 버거의 예술관이 짙게 들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가령 이런 구절, '파이윰 초상화 화가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었고, 이름이 주어졌다는 건 그 연속성에 대한 보장이었다.' (39쪽)


이런 말... 김춘수의 꽃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렇게 고대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 아니 자신들의 초상을 그림으로 남기는 행위는 바로 연속성에 대한 보장을 받기 위한 행위였다는 사실. 이런 저런 사실을 떠나서 예술은 우리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란 글에서


'예술가에게 진실이란 가변적인 것으로, 그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바라보기의 어떤 특정한 방식이다.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결정 이외에는 등을 기댈 곳이 없다.' (42쪽)


예술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남겼다. 그에게는 등을 기댈 곳이 자신의 작품활동 말고는 없다고 해야 한다.고독한 존재, 그러나 늘 진실을 갈구하는 존재. 그것이 예술가이고, 그런 예술가들에게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예술 행위 자체가 이미 자신이 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표현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술가들 뒤에 있는 그 무엇을 찾으려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버거의 글쓰기는 다방면을 아우른다. 철학도, 시도, 소설도 모두 그림과 관련이 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미술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쓴다. 


따라서 어떤 화가에 대한 글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책의 뒤로 갈수록 최근 작가들이 나오는데, 그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다른 곳에 실렸던 글들을 찾아 수록했기 때문에 그 화가의 작품 사진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엮은이가 그 미술가들의 작품을 찾아서 한 편 이상 실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또한 이 책에는 작품들이 모두 흑백으로 실려 있다. 흑백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 있기도 하겠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흑백으로 작품을 실었기 때문에 오히려 버거의 글에 더 집중하게 되지 않아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는 이 한 편으로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이 한 편이 읽는 내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바로 '대 피터르 브뤼헐'에 대한 글이다. 그의 그림에서 무관심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서 글을 쓴다. 마치 니묄러 목사의 시를 연상하게 하는 글. 또 이 글에서는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나오니... 이 놈의 무관심.


  '그림을 한 점 한 점 그릴 때마다 그는, 제대로 제기될 거라고 본인도 확신할 수 없었던 어떤 고발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다.

  그가 고발하고 싶었던 것은 무관심이다. 추락하는 이카로스를 보면서 쟁기질만 하고 있었던 농민들의 무관심, 입을 벌리고 십자가형 앞에서 구경만 하는 농민들의 무관심, 간청하는 플랑드르 사람들 앞에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는 스페인 병사 (그들은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들의 무관심, 역시 눈먼 자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말을 들은 다른 눈먼 자들의 무관심,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저 놀이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 죽음에 대한 신의 무관심.' (81쪽)


브뤼헐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버거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고는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이것이 바로 니묄러가 쓴 시에서 나온 구절대로 아무런 관심도 표명하지 않았던 모습과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무관심이 눈감아 준다는 말과 같음을, 그냥 몰랐다고 해서는 안 됨을 이 글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무관심이 많아질수록 불의는 더욱더 판치게 된다는 사실을...


'저항하지 않는 것이 곧 무관심이라는 점을, 잊어버리거나 모르고 있는 것 역시 무관심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려 했다. 무관심하다는 것은 눈감아 준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83쪽)


왜 예술을 감상하는가? 세상의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니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작가가 세상을 보고 표현한 작품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내 관점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을 한 방향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모습,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습.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는 노력을 예술 감상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좀더 진실되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쩌면 버거의 [초상들]이란 이 책은 예술가들의 초상을 통해서 바로 읽는 사람의 초상을 스스로 그려보라는 권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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