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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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소설은 재미있다. 우선 잘 읽힌다. 그리고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 끝까지 읽어야 한다. 끝까지 읽고도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주요 등장인물은 셋이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남자, 여자, 아주머니다. 구체성을 부여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이름과 상관없이 구체성이 살아난다. 읽어가면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또는 우리가 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그믐'이다. 생소하다. 그믐이라니..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달. 그런 그믐을 제목으로 달고, 작게 다른 제목이 달려 있다.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믐이라 그래. 그믐달은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거든. 그래서 쉽게 볼 수 없지. 해가 뜨기 직전에만 잠깐 볼 수 있어." (140쪽)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믐과 비슷하다는 얘기인데... 내가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이 아주 조금 확실할 뿐, 나머지는 다른 것에 가려져 불확실하다는 것. 사실 우리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은 왜곡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억도 조작된다고 하는데...


한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 이런 다른 기억들이 만나도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기 어렵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아주머니의 아들을 죽였다. 소위 말하는 학교 폭력이다. 학교 폭력하면 패턴이 나타난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학교 폭력을 바라보는 사람에 의해 학교 폭력은 일정한 패턴으로 그려진다. 가해자의 폭력에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거나, 가해자의 폭력에 참다참다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거나, 그렇게.


그 패턴이 진실인 양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고, 진실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다른 것들을 만들어 간다. 기억조차도.


가해자, 피해자를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 소설은 가해자인 남자가 피해자였음을 보여주는 쪽으로 가고, 피해자의 엄마인 아주머니가 가해자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진행이다. 그야말로 패턴이다. 패턴의 양 축이 있으면 중간이 있어야 한다. 그 중간에 여자가 나온다.


남자를 사랑하는, 아니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인 여자. 하여 이 소설은 각 장마다 세 개의 낱말들이 병치되어 나타난다. 남자-여자-아주머니를 연상할 수 있다.


여기에 신비로운 요소를 도입한다. '우주의 알'이란 것을 도입해, 남자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남자. 그는 선택해야 한다. 미래를 알고 있기에 어떻게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를.


소설의 끝부분에 가면 반전이 있다. 그냥 중간에서 피해자로만 살아왔던, 다른 이름을 가진 동창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했던 여자가 다른 면에서는 가해자였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아주머니도 이제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 삶이 명확하게 구분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얽히고 설켜 있다. 이렇게 얽히고 설켜 있는 것에서도 명확한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에는 거짓이 섞여 들어가지 않는다.


소설은 학교 폭력에 또 지은 죄에 대한 처벌은 어디까지인가? 그 죄는 과연 씻길 수 있는가? 피해자에게 가해진 피해가 과연 아물 수 있는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학교 폭력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했던 말과 행동들이 과연 자신의 기억과 맞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부분을 전체로 여기면서 지내왔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신의 기억 속에 갇혀 다른 면을 보지 못하고, 결국 그믐처럼 해가 묻혀 제대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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