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30년 전쟁의 한 연대기 범우희곡선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연희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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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작품은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거나 보면 안 된다. 브레히트가 의도했던 것은 등장인물과 거리를 두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 그것을 한자어로는 소격효과라고 했는데, 이 책에서 옮긴이는 생소화효과라고 한다.


즉 낯설게 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게 하는 것. 그러니 브레히트의 이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도 주인공인 억척어멈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으면 안 된다. 억척어멈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자식을 잃고도 살아가고자 하는 한 여인의 삶에의 의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브레히트가 의도했던 것이 그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브레히트는 개인의 운명조차도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속해 있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개인의 삶을 바꾸려는 것보다는 사회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가 마르크시즘에 빠져 있었으니, 개인보다는 사회, 제도를 우선시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유럽의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서도 사회구조를 찾아야 한다. 즉, 전쟁 속에서 전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부지하려는 개인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전쟁을 이용해서 살아남으려는 모습이 아니라,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억척어멈은 전쟁터를 따라다니는 종군상인이다. 변변치 않은 물건을 얻고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자식들 또한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억척어멈의 기원일 뿐이다. 자식들은 전쟁의 와중에 하나둘 죽어간다.


병사로 죽어가고, 도시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을 때 경고를 하다가 죽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자식 셋을 모두 잃고도 억척어멈은 전쟁 부대를 따라간다. 왜? 살아가기 위해서.


여기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억척어멈처럼, 그렇게 억척스럽게 전쟁 통에서 살아남으려고 한다고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식을 모두 잃고 살아남은 억척어멈이 과연 행복할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살아남기 자체가 아니라 전쟁이 아닐까? 이념이나 종교로 분열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용한 삶이 아니라 전쟁을 거부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이 희곡은 억척어멈을 통해서 전쟁을 거부해야만 우리의 삶도 평안해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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