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성스러운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1
김보영 지음, 변영근 그래픽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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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모두 잘 어울리며 함께 일하면서 살아가던 세상이 갑자기 너와 나를 분리하고, 남녀를 분리하고 다른 것들로 서로 나뉘어 갈등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자연까지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 인간에게 종속시키고 있는 중이다. 인류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그런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 철학자들, 인문학자들, 종교학자들 모두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답은 없다. 답은 없이 오로지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억측이라고, 또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


이렇게 논리적으로 대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우리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문제를 끌어내고,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답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답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특히 소설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소설은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상상이 현실인 세계, 그런 세계가 소설인데, 이 소설은 특이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전지전능하고 사랑과 자비로 인간에게 다가와야 할 신이 만약 차별주의자라면? 이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다름을 차별로 전환시킨 데에는 만약 신이 있다면 신도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소설은 인류가 행복하게 모두 동등하게 잘 지내던 시대로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일을 같이 했다. 들에서는 다 함께 무장을 하고 짐승을 잡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같이 아이를 돌보며 요리를 했다.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모두 함께였으며 평등하게 공사를 정했다.

  신이 보기에 세상에는 좀더 질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신은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자는 우수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신은 그 말을 남기고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15쪽)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찾기 시작한다. 왜 신이 그런 말을 했을까? 차이는 단 하나... 남자에게는 고추가 있었다. 이 달랑 고추 하나 가지고 남자들은 자신들의 고추를 애지중지하면서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신은 다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증오가 세상을 휘감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증오했고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늙은이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 다른 세상 한구석에서는 권력자들이 과학자들과 성별이 모호한 이들을 신의 이름을 살해하고 있었다. ... 이에 신은 만족하며 말했다.

  "이제야 세상에 질서가 잡혔구나." (25쪽)


섬뜩하지 않은가.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 인류는 바로 이렇게 살아가게 된다. 소설 속 모습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습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별 차이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차별을 없애나가려는 노력이 일어난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소설은 더 큰 상상력을 보여준다. 함께 평등하게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신이 광화문에 내려온다. 거대한 모습으로... 이런 신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다른 방도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하는 모습이 아니라, 신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그것을 자신이 위대하다고 하는 근거로 삼는다.


신이 차별의 근거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신(소설에서는 신 중에 알파다)만 있지는 않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간으로 재림해 몸소 경험하는, 즉 차별을 경험하는 신들도 있다. 오메가, 입실론, 감마 등등. 


그들은 광화문에 재림한 신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즉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차별주의자인 신을 등장시켜 인간들의 삶을 조망한다.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들 멸망할 때까지 차별주의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찾는다. 찾아야 한다. 모두 차별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신과 비슷한 형상을 지녔다고 안전한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면에서 신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의해 도전받고 투쟁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게 신이 우리 인간은 어떤 질서를 찾을 것인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서로가 협력해서 좀더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답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에는 이 소설을 다시 생각해 보자. 신이 차별주의자라고 해도 우리는 평화로운 질서를 추구해야 하는데, 과연 신은 차별주의자인가? 아니라고 모두들 답하지 않을까? 신이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우리 인간들이 서로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고 투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신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신이라면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이 차별로 가는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어울리며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의 의지는 언제나 신의 읾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본인 자신이 신이기에 신을 소환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 뿌려진 신의 파편이며 지상에 내려온 신,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88-89쪽)


자, 우리 모두 신이 되자. 세상에 차별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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