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과 달리 삶이 보였으면 한다. 물론 삶은 늘 보였겠지만, 작년엔 코로나19로 인해 암담하지 않았던가. 우리들 삶이 전세계를 덮친 감염병으로 가려져 있지 않았던가.
감염병조차도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음을 우리는 한 해 동안 똑똑히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런 감염병의 시대에 삶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평시에도 삶이 잘 안 보이던 사람들이었음을... 그나마 그들이 볼 수 있던 쪽창도 감염병은 막아버리고 말았음을 온몸으로 겪었던 한 해였다.
'삶이보이는창 124호'는 겨울호지만 새해 시작을 알리는 호이기도 하다. 그러니 추운 겨울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고, 봄을 기대하게 하는 책이기도 한 셈.
이 책에 실린 글들 역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희망을 지니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만 하니, 우리 사회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대변하는 잡지라고 해도 되지만, 대변이라는 말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는, 또는 그들이 만들어 가는 잡지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래야 '삶이 보이는 창'을 우리들 모두가 지니게 될 테니 말이다.
특히 '삶이 보이는 창'에는 '노동'에 관한 글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노동없이 살아갈 수 없음에도 노동을 천시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 아니던가. 그러니 노동을 강조한다기보다는 노동이 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는 삶창의 글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노동'에 관한 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잘 실려 있는데, 이번에 '시인의 눈'에서 다룬 이주노동자들의 시는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을 다루고 있는 방송들을 보게 되면, 그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에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논조로 방송을 이끌어가면서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노동하러 온 사람들 아닌가.
그 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어 하는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로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힘든 일들, 남들이 많이 꺼리는 일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기본적인 노동을 그들이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기본적인 인권,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그러니 그들이 쓴 시집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어떤 감정을 지니고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삶이 보이는 창'은 우리에게 삶을 보여준다. 우리들이 가끔은 눈 감아 버리는 삶들이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음을, 그들도 삶을 볼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을 여러 글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 올해는 모두에게 '삶이 보이는' 그런 한 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