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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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타협하지 않음. 저널리스트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자세이지만, 작가도 이런 자세를 지녀야 하나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살아간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어보라.


사실과 진실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이 사람에게 기자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은 동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두 생활에서 글쓰기 방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데서는 차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긴 외국 기자를 알 수가 없지. 그껏해야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이나 들어봤지, 우리나라 기자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탈리아 기자, 그것도 세상을 뜬 지 십 년도 더 된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현대 작가들이 쓴 이탈리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알라딘에 오리아나 팔라치를 검색해 보니, 소설 작품도, 또 그에 대한 소개한 책도 제법 있다.물론 소설은 절판이거나 품절인데,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었다. 어쩌면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저널리스트로서 또 작가로서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한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자, 작가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고, 또 특정 정파의 이익에 따라 사실을 짜깁기 해서 진실을 호도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많이 보아온 터에 침묵하지 않는다고, 불편한 삶, 불편하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사람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레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널리즘이 상실되어 있으니...


그렇다고 이 책은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자서전이 아니다. 죽은 뒤 그가 쓴 글들에서 뽑아 편집한 책이다. 하지만 모든 글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글이니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우선 침묵하지 않는 삶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말하고 있다.


작가나 기자는 사랑받고 환영받고 칭찬받는 직업이 아니다. 그들의  역할은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과 잘되는 것을 들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나 기자의 임무는 나쁜 것과 문제가 되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미움받고 공격당하고 모욕받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76쪽)


기자만이 아니라 작가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는 허구를 창조하는 사람이기에 진실에서 멀어질 것 같지만, 아니다. 작가는 사실들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기자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작가 역시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진실과 멀어진 작가의 생명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왜 작가 역시 진실되어야 하는지 오리아나 팔라치의 말을 보자.


회고록이나 자서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었으므로 소설 형식이 필요했다. ... 일대기에서 끌어내어 정교하게 다듬고 재창조하여 더 심오하고 더 큰 진실로 옮겨놓은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일화는 객관적인 잣대로 설명될 수 없다. 저널리즘은 축소하지만 소설은 확장한다. ... 소설은 시와 같다. 그 시간과 그 장소, 그 사람을 초월해서 내일과 모레에도 유효하게 남아 있으며,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야기이다. (197-198쪽)


이렇게 진실을 말하려면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된다. 편안함만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불편해져야 하고, 남들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강하게 주장되기 전에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런 말도 했다. 세상을 자유롭고 진실되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느껴지는 일일 것이다.


남자들의 주요한 문제는 경제적이고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여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사실에서 나오기도 한다. 해부학상의 어떤 차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체의 차이와 더불어 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터부를 말하는 것이다. (79쪽)


당신이 남편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을지라도 그는 당신이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준비하고, 먼저 집에 달려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당신 기분과 관계없이 그의 기분에 따라 장단을 맞춰야 한다. (185쪽)


이 말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을 불편하게 보기 힘든 사람이다. 세상의 절반이 선천적인 조건으로 인해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여성의 문제를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던 호메이니를 인터뷰할 때 겪는다. 그 과정을 읽어보면 오리아나 팔라치가 이렇게 말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용기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109쪽)


이 말 때문이라도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일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소위 기레기들이 자신이 들은 말의 앞뒤를 자르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말들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내보내는 행태와 비교하면 새겨들어야만 한다.


내가 증오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터뷰이가 내게 한 말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주의를 기울였다. (127쪽)


가장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자세다. 이렇게 사실을 통한 진실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멀리하려 하지만 진실을 가릴 수는 없으므로, 이런 사람을 불편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진실은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나는 불편한 것을 말하는 불편한 여자이자 불편한 이야기를 쓰는 불편한 작가이다. (196쪽)


불편한 작가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오리아나, 자신의 자유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거부할 수 있었던 사람. 어떤 정권의 구미에 맞는 기사를 쓰지 않은 사람.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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