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명랑한 은둔자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떠올렸다. 자연 속에 스스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명랑한 은둔자 아니겠는가.
사람들사이에서 살아가는 일도 좋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활을 하는 삶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했다. 그러니 이 책 역시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가꿔가는 사람이야기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이 책은 사람들을 떠나 자연에서 사는 삶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는 사람의 이야기다.
함께 살지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 이를 고립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고독이라고 하면 괜찮을 듯하다. 고립은 외로움을 낳고, 외로움은 결국 자신을 가두게 되지만, 고독은 자신의 세계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만남의 일시 정지라고 할 수 있으니...
캐럴라인 냅. 참으로 복잡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다. 알콜 중독에도 빠졌었고, 거식증에 빠져 몸무게가 38킬로그램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던 사람.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런 과정을 솔직하게 써내려 간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중독에 관해서 이런 말이 있다. 명심해야 할 말이고, 캐럴라인 냅이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중독이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행동이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162쪽)
그렇다. 자신을 놓아버리는 단계까지 이르면 심한 중독이 된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진다. 그 전에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이 책은 이렇게 내밀한 자신의 생활을, 감정을 가감없이 잘 드러내고 있어서 캐럴라인 냅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들이 단순한 인간이 아님을, 아주 복합적인 존재임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단지 자신의 내면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쓰고 있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성추행에 관한 글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캐럴라인 냅이 자신이 겪은 일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권력과 섹슈얼리티의 오용'이란 글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어떤 글에서는 너무 예민한 것 아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읽다보면 공감이 가는 글들이 많다. 섬세한 마음결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 그 다름과 함께 하는 일. 그것은 함께 하되 홀로일 수 있는 시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이 책 읽을 필요가 있다. 읽으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