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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ㅣ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평점 :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데, 사실 말로만 심각하다 심각하다 하지,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직접 눈 앞에 닥친 일이 아니고, 정부 관료들에게는 아무리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며, 과학자들에게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읻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정부나 과학재단들도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일에는 투자를 잘 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0쪽)
그러니 기후 위기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카산드라의 예언밖에는 되지 못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말해줘도 누구도 믿지 않고, 또 행동하지 않는 그런 일.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 책의 또 다른 쪽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를, 또는 식물을 많이 심으면 된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 예측되는 향후 수백 년에 걸친 온실가스 수준의 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고구마를 기르는 실험을 해오고 있었다. 이 온실가스 예상치는 우리가 탄소 배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속 현재처럼 산다면 생길 것이라고 예측되는 수치다. 고구마들은 이산화탄소 양이 늘면서 더 크게 자랐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고구마들에는 우리가 아무리 비료를 줘도 영양소가 더 적게 들어 있고, 단백질 함유율도 낮았다. (387쪽)
공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느라 힘을 그쪽으로 써버리는 식물들이 영양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식물은 땅과 하늘, 양쪽에 모두 걸쳐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만 지구가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활의 전환 없이 기후 위기는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자런 호프라는 과학자가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고, 식물과학자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그것은 바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식물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어쩌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식물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환경 과학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113쪽)
바로 다르게 보기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래야 그 대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거리두기. 어쩌면 식물을 인간의 일부로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은 다르다. 모든 대상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다 다른 대상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또는 무기물이든.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르게 보기는 곧 함께 살기다. 함께 살기에 실패하는 경우는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자런 호프 역시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과학자 집단은 자신들의 모습을 설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학위와, 외모, 그리고 말투까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262쪽)
어디 성차별뿐이랴. 모든 차별이 바로 이렇다.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계에서도 이런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소수자가 과학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 과학계의 차별뿐만 아니라 연구 기금 부족까지 이겨내야 한다. 자런 호프는 이 과정을 이겨내고 식물에 관해서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길로 접어든다.
그 지난했던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무척 흥미롭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를 아이를 대하는 자런 호프의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이를 놓아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367쪽)
이 말을 과학으로 바꾸어보면 자신의 성과(결론-주장)를 놓아줄 수 있는 과학자,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자가 좋은 과학자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자식을 놓아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는 과학자 역시 좋은 과학자일 수 없다.
자런 호프는 이런 것을 식물, 나무의 입장에서 깨닫게 된다. 새로운 시각, 그리고 식물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석하려는 모습에서 과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자서전에 그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물에게서 배워가는 과정도,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도, 또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맺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인 구달은 '닥터 두리틀'이란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다. 어떤 영장류 학자는 제인 구달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고. 과학을 어렵게만 여기고, 재미없게만 여기는 사람, 이런 책들을 읽으면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과학을 무슨 공식만으로 교육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선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행동.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 이 책은 적절하다. 단지 과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