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시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 시로 나타난다. 그렇다. 우리 삶이 시가 될 수 있음을 박성우는 자신의 시를 통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읽으면서 우리들의 생활을 만난다. 이미 떠나온 농촌의 삶도 만나고, 가족도 만나고, 그리고 소소한 것들에서 큰 의미를 만나기도 한다.


  시란 너무도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자기들끼리 즐기라고 접어두는 존재가 아니라, 도처에서 시를 발견하고, 또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음을 박성우는 자신의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를 보자. 참 짧다. 그런데, 그렇지! 하면서 맞장구를 칠 수 있다.


   칫솔과 숟가락


내 속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칫솔과 숟가락이다


박성우, 웃는 연습. 창비. 2020년 초판 4쇄. 11쪽.


늘 내 입속을 들락거리는 존재. 그것도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에 세 번은 꼭 드나드는 존재가 바로 칫솔과 숟가락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보다 적게 들락거리기도, 또 어떤 이에게는 이보다 더 많이 들락거리기도 하겠지만, 입속, 누군가의 입속을 이렇게 자주 드나들면서 구석구석 살펴보는 존재도 드물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시를 읽으면 아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그래, 이것이 시지. 이렇게 내 생활 속에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시라고...


숟가락이 바깥에 있던 존재를 나에게 가져다 주고, 내 속으로 집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래서 숟가락은 외부와 나를 하나로 연결해 주어 내게 더하기의 역할을 한다면, 칫솔은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빼기의 역할을 한다. 


이제는 나에게 필요없는 것들을 꺼내는 것. 덕지덕지 불필요한 것들을 지니고 있지 말라고 하는 것. 그러니 내게 필요한 것을 내 속으로 직접 날라주는 숟가락과 내 안에 있는 불필요한 것을 밖으로 직접 내보내주는 칫솔만큼 내 속을 잘 아는 존재들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하기와 빼기의 조화!


기가 막히다. 늘 손에 쥐고, 내 입 속에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는 이 존재들이 이렇게 시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할 줄이야. 이런 시들이 제법 있다. 그렇다고 이런 시들만 있지는 않다. 박성우 시인이 만나는 사람들이 시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사건들도 시에 나오고.


이런 시들 중에서 '나이'란 시. 정말 먹고 싶지 않지만 아무리 거부해도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먹을 수밖에 없는 것. 먹으면 먹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한번 먹으면 뱉어낼 수 없는 불가역적인 존재. 어떤 이들은 이를 부정하기도 하지만, 겨우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도 있었으니,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 


그렇지만 이것을 현명하게 활용하면 정말로 좋은 대접을 받게 해주는 존재. 추함을 넘어 원숙함이 되게 하는 존재. 바로 나이다. 시를 보자.


   나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


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박성우. 웃는 연습. 창비. 2020년 초판 4쇄. 82쪽.


이렇게 나이 먹어갔으면 좋겠다. 아니다. 먹는 게 아니라 들어갔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나이에 젖는 것, 그것이 물들듯이, 나이 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가지 않고 나이 들어가는 삶을 사는 것.


그래, 나는 이제 나이 들어가야 한다. 자연스레 나이가 내게 들어와 나를 물들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중심에서 멀어지지만 남들에게 가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둥글둥글 부드럽게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렇게 나이 들어가야 한다. 물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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