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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슬픈 열대
폴 고갱 지음, 박찬규 옮김 / 예담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폴 고갱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고흐다. 그리고 장소로는 타히티다. 또 그를 떠올리면 소설 '달과 6펜스'도 떠오른다. 읽은 것 같은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소설. 어쩌면 제목만 보고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해설만 읽고 넘어갔을 수도 있고. 아님, 어릴 때 읽었는데, 기억에서 사라졌는지도... (이 참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여간 고갱이라는 사람은 요즘 컴퓨터 검색 용어로 치면 연관 검색어에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 파리라는 대도시의 삶을 견디지 못해 타히티라는 원시성이 강한 곳으로 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 사람.
고흐와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불화로 헤어졌지만, 고흐에 관한 그의 글을 읽어보니, 고흐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가족과 헤어져 살았는데, 어찌보면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가족과도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 많다.
그렇게 헤어져 살고 있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생각을 그치지 않았던 고갱. 부인인 마테에게도 타히티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홀로 타히티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고갱.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림은 잘 안 팔리고, 그래서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타히티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하니... 고흐 역시 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이 책에서 고갱이 쓴 편지글을 보니 자살 시도를 했지만 비소(?)를 너무 많이 먹은 바람에 다 토해서 살아났다는 것.(223쪽)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심장마비(이게 사인이라고 추정한다고 한다. 216쪽)로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고생은 현세에서의 삶은 지지리도 궁상맞은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정 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견뎌내야 했으니...
하지만 그는 역작을 남겼다. 제목도 철학적인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린 미완성 작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자기 작품을 스스로 평가한다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이 그림은 내가 전에 그린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나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우리라고 믿네.
죽기 전에 내게 남은 모든 힘과 극한상황에서 나오는 고통스런 열정을 모두 쏟아붓고 순수하고 티없는 이상을 불어넣었네. 그래서 작품의 미숙함은 사라지고 삶이 솟아올라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
이 그림은 모델과 기교를 배제하고, 그림이 내세우는 규범들을 무시해버렸네.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전부터 이런 것들을 뛰어넘고 싶었네. (223쪽- 226쪽)
이렇게 그는 우리에게 작품을 남겼다. 그가 살던 곳을 과연 슬픈 열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남긴 곳인데... 슬픈 열대라고 하기보다는 작품의 안식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슬픈 열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고갱이 살아가던 그곳이 다른 식민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곳에 불과했다는 것.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고갱이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는 말년에 탄압받는 원주민들을 위해 일을 하려 했다고 한다. 탄원서도 내고. 그에겐 그곳이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억압받고 무시 당하는 그런 곳이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비록 그가 일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자신의 예술을 지속하게 해준 그곳을 그는 적어도 동등하게 대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고갱 자신이 직접 쓴 글을 통해서 그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려고 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고갱의 글을 읽음으로써 고갱의 작품에 더 많은 의미가 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글만큼 고갱의 그림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니, 여러모로 고갱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