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보이는 창이 왔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는 삶창.
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을텐데...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에서 하는 일들이, 일이란 표현보다는 짓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선량(選良)이라는 사람들.
그들은 선량이 아니라 불량인데, 어쩌다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 얼굴과 이름을 알리고, 정당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국회라는 곳에 들어가 그냥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큰소리를 치다가 나오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지대한 가운데, 삶창처럼, 거대 언론이, 아니 다른 언론들도 잘 다뤄주지 않는 이러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고 많겠지만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사람들, 사회의 음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고통받고 있음을 이번 호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재난지원금도, 고용유지 지원금도, 하다못해 실업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냥 사회에서 내쳐지게 된다. 그런데도 국회에 있는 그 불량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거대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안타까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잠시 반짝하다가 그만이다. 그러니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제자리 걸음인 것은 확실한데, 기대치가 높아져서 많이 뒤로 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앞으로 참 많이 나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제 자리라니.그런 제자리가 아니라 후퇴다. 촛불을 통해 정권이 바뀌었는데, 무엇이 달라졌을까?
사회 최하층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현실 아니던가.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걸까?
삶창에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지만, 더 많은 사람들, 좀더 힘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전교조의 노조 아님을 통보한 것이 잘못이라는 판결이 났다. 이번 호 표지 그림을 보면서 이게 무슨 그림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전교조와 관련된 그림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는... 하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그래서 더욱 슬픈. 그림 밑에 있는 설명을 읽어보면 부끄러운 과거를 만나게 된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가 반복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여기에 인하병원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성남시의료원이 설립되게 했음에도 그들은 그 의료원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이야기. 공공병원 이야기, 공공의료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이때에, 공공의료를 한 도시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이 공공의료 현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현실일까?
이것이 공정일까? 공평일까? 그냥 너희들은 해고된 사람들일 뿐. 전에 있던 병원에 근무했던 사람들일 뿐이라고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이 공공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주민발의부터 시작해서 오랜 시간을 노력해 왔는데, 정작 공공의료원이 만들어지자 초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공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박일환, 시인의 시선-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이런 것도 제자리 걸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이건 명백한 퇴보다. 이런 퇴보를 막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든다. 삶이보이는창 123호를 읽으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회 최하층에서, 또 바로 그 위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
삶창만이 아니라 거대 언론들이 국회라는 그런 불량들에 관심을 가지는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면, 가장 행복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보도를 통해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 이렇게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 그것이 연대로 나아가고, 그런 연대는 사회를 좀더 좋게 바꿀 수 있다는 것.
이런저런 생각이 든 이번 호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삶창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