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시집이다. 1986년에 나온 시집이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34년 전에 나온 시집이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고정희란 시인은 낯선 시인이 아니라 친숙한 시인이었을텐데, 지금은 낯선 시인이 되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시인이기도 해서, 지금은 만나볼 수 없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고정희가 살던 시대와 지금 시대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지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 정말 그렇게 많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어디 시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던가. 좋은 시란 세월의 힘을 이겨내는 시 아니던가. 그러니 비록 오래 된 시집이지만 분명 지금을 생각하게 하는 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따.

 

이 시집은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났다. 고정희란 이름만으로도 시집을 사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으니. 거기다 요즘은 구하기 힘든 시집임에야.

 

80년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이 시집의 2부에 실린 시들을 묶고 있는 제목 '프라하의 봄'에서 체코를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체코에서 일어났던 프라하의 봄처럼 우리에게도 서울의 봄이 있었으니까. 서울의 봄이라고 말하기에는 시대가 너무도 암울해서 다른 나라를 끌어와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여 고정희의 이 시집에는 당시 우리 사회를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한 시인을 만날 수 있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연작시들과 더불어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또다른 연작시는 '현대사연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일들, 그것에서 느낀 점들을 시로 쓴 것인데... '현대사연구 · 10'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삼신할머니와 만난 바리새 율법은 / 성령만능주의 광신교를 만들고 / 중국 유교와 만난 바리새 율법은 / 가부장제 복종주의 종파를 만들고 / 단군할아버지와 만난 바리새 율법은 / 국가제일주의 종파를 만들었읍니다 / 이들은 각기 분파가 다르나 / 따져보면 두 가지는 하나로 닮았는데 / 교주를 하나님쯤으로 믿으며 / 부조리한 일일수록 외면하는 것입니다 / 그름과 옮음에는 대답이 없는 신전 / 거기에 황금제단을 쌓고 / 일곱삼년 안태굿에 일월성신 키우니

(고정희, 눈물꽃. 실천문학사. 1986년. '현대사연구·10' 부분. 117쪽.)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어찌 이리도 변하지 않았는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시다. 오래 된 고정희 시집을 읽으며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과거로부터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왔는지...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힘껏 내달렸지만, 원 위에서 뛴 격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 것은 아닌지.

 

달리고 달려 제자리에 오는 일을 막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를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단지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맹목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기에. 고정희 시집 '눈물꽃'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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