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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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두 문장으로 정리하면 '한국이 싫어서, 내 행복을 찾아 떠났다.'가 된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설에서는 호주를 예로 들었지만, 그것은 한때 호주 이민을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지, 호주가 딱히 행복을 보장해주는 나라는 아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 나라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한국이 싫다고 호주로 떠난다. 호주에 가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해 호주시민으로 살아갈 결심이다. 시민권을 따고 거기에 정착하기까지 한국과 호주에서 있었던 일을 빠른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참 무거운 주제고, 진지한 주제임에도 소설은 경쾌하게 넘어간다. 이 경쾌함이 때로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어쩌면 성공담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호주 시민이 된 것으로 설정이 되었기에, 한국에서 하는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히 영어공부를 하고 호주 시민권을 딸 수 있을 거라는 것... 이것이 역설적으로 한국이 참 힘든 나라임을 드러내 준다.

 

소설 속 화자가 호주에서 겪은 일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순탄한 일만 겪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질문을 하면 한국에는 개인의 능력에 다른 외적인 것들이 더해짐을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해체된 '학벌없는 사회'. 학벌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해체된 것이 아니라 이미 경제적 세습으로 학벌이 세습되는,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학벌없는 사회'라는 단체가 해체된 것이다. 학벌만으로 우리나라를 설명할 수 없기에.

 

이 소설에서는 학벌이 여전히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학벌에는 부모들의 능력이 뒷받침되고 있음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학벌의 대물림이 고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곳에서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말이 되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 왜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하는가? 개천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미꾸라지나 다른 물고기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이 되면 안 되나? 꼭 개천을 좁게 여기는 용이 되어야 하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개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면 '한국이 싫어서'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표현한 한국은 개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는 나라다. 그러니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이룰 수 있을 테지만,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곳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환상을 갖지는 말자. 그만큼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한다. 소설 속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 동포를 등처먹는 사람도 있고, 유색인이라고 차별을 당하는 일도 있으며, 시민권을 얻더라도 번듯한 직장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 직업으로 서열이 정해지지는 않으니까. 적어도 겉으로는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니까.

 

소설 화자를 통해 직설적으로 우리나라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국 사회는 우리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으니까.

 

'한국이 싫어서, 행복해지기 위해 떠났다'라는 말을 '행복해지기 위해 한국에 살겠다'라는 말로 뒤집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월하게 읽히는 이 소설이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님을,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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