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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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른다. 그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고른다. 소설을 멀리한 지는 꽤 되었고, 삶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라고 느끼고 있는 요즘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쩌면 드라마에 비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작품들에서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는 것, 자꾸만 빠져들어가게 되어서 결말까지 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

 

최근 소설들에서 요즘 삶의 모습들이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소설을 읽으면서 삶을 거꾸로 발견하는 경우도 있으니, 드라마 역시 소설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둘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의식적으로는 멀리하려고 하기도 하니...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들은 내용이 다 달라서 어떤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소설에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는 작품집인데, 그럼에도 이토록 다양한 삶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중에 특별한 용어를 보고서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지돈이 쓴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소설인데, 작가 소개와 해설을 금정연의 소개에 '후장사실주의'라는 말이 나왔다. '후장 사실주의?'

 

사실주의니까 리얼리즘이라는 뜻인데, 후장은? 후장? 우리가 아는 장의 맨 뒤. 소위 직장 쪽인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지돈, 금정연 등이 후장사실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단다. '후장 사실주의'란 잡지도 냈다고 하는데, 읽어보기는커녕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 2015년 시네21 인터뷰에 이런 글이 있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눈먼 부엉이>가 당선돼 등단했을 때 정지돈이 쓴 당선소감엔 후장사실주의의 탄생설(!)이 나와 있다. “2012년 여름 오한기와 후장사실주의 그룹을 결성했다. 통화 중에 우연히 나온 것으로 내가 후장사실주의를 결성하자고 말하자 오한기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후장사실주의는 <야만스러운 탐정들>(로베르토 볼라뇨)에 나오는 내장사실주의의 패러디다.” 기성문단을 공격하고 기성질서를 파괴하길 서슴지 않았던 로베르토 볼라뇨가 20대 초반 초현실주의를 패러디해 인프라레알리스모(밑바닥사실주의-내장사실주의)를 결성했고, 정지돈과 오한기는 다시금 로베르토 볼라뇨의 말을 패러디해 후장사실주의를 만들었다. 더불어 에 실린 정지돈의 글을 인용해 후장사실주의를 설명하면 이렇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인용이다. 문학은 세계의 인용이다. (중략) 후장사실주의는 문학의 인용이다. 그러므로 후장사실주의는 세계의 인용의 인용이다.”

 

(출처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2409)

 

후장 사실주의? 어려운 말이다. 그런데 쉽게 이야기하면 사실주의에 똥침을! 정도로 하면 안 되겠나 싶다. 사실들은 사실들인데, 그것들을 어떤 논리적 관계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배열하는 것. 그래서 사실적이기는 한데 도무지 사실적이지 않은 느낌을 주는 소설. 이 정도 아닐까?

 

이 수상작품집에 실린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보면 도시개발이 되기 시작하는 서울의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 그런 서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이지만, 소설은 기존의 사실주의를 넘어서고 있다. 여러 사실들이 나열되고 중첩되고 있는데, 이런 사실들이 모자이크 식으로 또는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낯선 느낌을 주는데, 그 점이 이 소설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집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바로 이런 '낯섬'이 아닐까 한다. 가까이 있지만 서로에게는 낯선 존재이기만 한 관계들.

 

최은미의 '근린'이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한 공간에 같은 시간에 모여 있지만, 이들은 육체적 거리는 가깝지만 마음들은 서로 닫혀 있다. 몸은 가깝고 마음은 먼 상태. 그래서 '근린'이라는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 제목이 가까이 지내지만 서로 낯선 존재로 지낼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낯섬은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주인공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지낼 수밖에 없는 현대인 또는 사람들.(이장욱, 우리 모두의 정귀보. 김금희, 조중균의 세계) 한 집에서 지내더라도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열어보지 못하고,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지내야 함을 어느 가정에 보모로 들어가 지내는 사람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손보미의 '임시 교사', 함께 지내더라도 이해한다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상대를 자신의 틀에 가두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윤이형의 '루카'. 그리고 백수린의 '여름의 정오'

 

일곱 편의 소설들이 각기 다른 내용으로 다가오지만, 그래서 다른 삶들을 엿보고, 내 삶을 돌아보는 역할을 하게 하지만, 공통적으로 현대인들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가깝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새로운 용어를 만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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