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하나... 높은 출산율로 인해 산아제한 표어들이 만들어졌던 때가 엊그제(불과 100년도 안 된 시기에 롤로코스터와 같은 정책 변화를 겪어야 했으니 두 세대 전이지만 엊그제라는 표현을 쓴다) 같은데, 지금은 출산율 저하로 인해 문제가 심각하니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하니...

 

  남성들이 정관 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감해 주던 시대에서, 다자녀 가정에게 이익을 주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그럼에도 N포세대라 하여 결혼에 이어 자녀마저도 포기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말았으니... 직장, 집, 결혼, 자녀들을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시대. 특히 결혼을 해도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예전 표어들을 찾아보니, 1980년대까지는 많이 낳지 말자는 표어가 주를 이루었다. 인구가 많아진다고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한 때. 그때 나온 표어들을 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 이제는 많이 낳아야 한다는 쪽으로 표어가 바뀐다.

 

허전한 한 자녀, 흐뭇한 두 자녀, 든든한 세 자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출생률이 너무 낮아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에서, 그냥 인구가 국력이다라는 말을 떠나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출산이다. 왜 함께 살아야 하는가? 왜 자기 세대를 이을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냥 경제 생산인구때문에 많이 낳으라고 하면 안 된다. 사람을 경제 지표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경제 지표때문이 아니라 함께 해야 더 사람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연인들만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사회가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이 지금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그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가 다른 삶을 동경할 수 있지만, 대다수가 자연인이 된 사회에서는 그렇게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선망의 눈길로 볼 수가 없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함께 살아가야 할 시대. 다른 사람들로 인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문이 더 많아져야 하는 시대. 다른 사람들은 바로 내가 세상을 보는 창(窓)이고,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문(門)이다.

 

우리는 라이프니츠의 말처럼 '창(窓)이 없는 단자'가 아니라 '창이 있는 단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 있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거다. 현실의 장벽이 너무도 높고 두꺼워서 그 장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책임을 개인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사회가, 우리 모두가 그런 장벽을 낮추려고 해야 한다.

 

N포세대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존재하는 한, 가족을 이루고자 해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N포세대라는 말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성복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읽다가 '높은 나무 흰 꽃들은 등을 세우고18'이란 시에서 이래서 가족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높은 나무 흰 꽃들은 등(燈)을 세우고 18

 

  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 외부로 열린 그대의 창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 그대가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그대의 창은 하나둘 늘어난다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대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그처럼 또한 그대는 그대의 아내와 아이들의 외부로 열린 창 그대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그대를 만나지 않을 때 그대는 벽이고 누구나 벽이 된다

 

이성복,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문학과지성사. 2005년 초판 10쇄. 28쪽.

 

이 시를 보면 가족을 이루며 살아야 할 이유가 나와 있다. 캄캄한 어둠에 갇혀 살지 않기 위해서. 외부로 열린 창으로 세상을 보며, 벽으로 쌓인 곳에서 외부로 나갈 문을 만들기 위해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

 

벽을 쌓지 않기 위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창이 되어주기 위해서. 

 

이 시를 읽으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이라는 구절과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이라는 구절인데, 시집이 처음 나온 때가 1993년이니, 2020년이 된 지금은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을 다양하게 해석해야 한다. 

 

'결혼'이라는 말도, 또 '여인'이라는 말도. 글자에 매인 이해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 그건 시를 읽을 때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 의미를 더 확장해 나가는 것. 글자에 또다른 의미들을 덧붙이는 것, 그것이 시다.

 

그렇게 이 시는 글자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읽어야 서로를 창窓이 되고 문門이 되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자칫 사전에 있는 풀이대로만 읽으면 창이 아니라 벽을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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