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엔 교토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쯤 되는 도시.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 도시. 그래서 이번 답사기는 좀 친숙하다. 물론 교토를 책 한 권으로 정리할 수가 없어서 두 권으로 나눠서 서술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교토라는 도시가 지니고 있는 문화가 어찌 책 한 권으로 정리될 수 있겠는가.

 

교토에 갔을 때 놀랐던 점은 집들이 높지 않다는 점.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 가도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에 견주어 교토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교토에서 문제가 되는 건물이 현대에 건축된 교토역과 교토 타워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또한 너무도 깨끗한 길거리, 그들의 질서의식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카페를 찾기 힘들었다는 점도 그랬다. 우리나라 도시 어디를 가도 카페는 100미터 이내에서 몇 개를 찾을 수 있는데, 교토에서 좀 쉬고 싶어서 - 그날은 많이 걸었다. 다리가 무척 아파서 카페에 들어가 쉬고 싶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 더 많이 걸었다 - 찾았는데, 간신히 찾은 카페가 아주 단촐했다. 좌석이 네 개도 채 안 되는, 그러나 체인점 이름을 달지 않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그런 모습에, 어쩌면 천년 고도라고 하는 교토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답사기에서도 일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모습에 놀라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그들은 결코 남을 채근하지 않는다. 줄지어 관람을 해도 앞사람들이 나아가지 않으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기다린다. 또한 작은 것에 공을 들인다 등등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택시기사의 친절함까지.

 

이런저런 것을 떠나서 교토 시대가 되면 (교토 시대라는 말보다는 헤이안 시대와 가마쿠라 시대 정도가 걸려 있는 답사기가 이번 3권이다) 일본은 일본다운 문화를 확립한다.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가 만들어지고 발달해 가는 것이다.

 

그런 문화들이 지금도 남아 많은 사람들을 교토로 오게 한다. 그래서 교토 여행을 할 때 일본 역사를 알면 더 교토를 깊이 있게 여행할 수 있게 된다.

 

이 답사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유홍준이 바라는 역사 교육이고, 문화 교육일 것이다.

 

  나는 지금 교토 답사기를 쓰면서 독자들이 은연중에 유물과 유적을 통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익힐 수 있기 바라면서 교토 이전의 광륭사부터 시작해서 헤이안시대의 동사, 연력사, 청수사 그리고 후지와라시대의 평등원까지 서술했다. 답사기를 통해 내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입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299쪽)

 

그래서 교토에 있는 유물을 통해 일본 역사를, 또한 일본과 관련이 있는 동아시아 역사를 알아가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를 본다는 것은, 그 나라만의 문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의 문화를 함께 살핀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신사(神社)의 나라라고 하는데, 유홍준의 답사기에서는 신사에 대한 언급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우선은 일본 문화 속에 있는 우리 문화를 살피는 것, 또 일본 문화와 우리 문화, 동아시아 문화의 관련 양상을 살피는 것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토에서도 절을 중심으로 이 답사기는 펼쳐진다.

 

일본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이 답사기에서는 절을 중심으로 펼쳐가고 있다. 하여 단순히 절 건물의 모습이라든지, 절에 있는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하여 일본의 역사를 정리해 알려주고 있다.

 

유물을 통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에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역시 유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단순히 지식의 나열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영상으로 우리 머리 속에 담으라는 의도일 수 있다.

 

지식은 장소성을 띨 때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덧글

 

2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삼십삼간당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1600년부터 10년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원 아래 대수리가 이루어졌다. (324쪽) 고 되어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8년에 죽었으니, 그 아들 히데요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지... 정정이 된 판본이 나왔는데, 내가 읽은 책에 그 부분이 빠진 건지, 아니면 인물들의 생몰년도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것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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