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130호를 읽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민들레]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한 온라인 수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온라인 수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도 있었고, 중위권 학생들의 학력저하가 우려된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것이 본질적인 평가일까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교육을 해야 하는가?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빼고, 오로지 학업성취도만을 가지고 또는 수업을 하는 온라인 플랫폼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글과 비교하여 우리나라 교육방송(EBS)의 기술력이 한참 떨어진다는 말도, 또 경제력에 따라 정보 격차가 나고, 그 정보 격차와 비례해서 성적 격차가 나고 있다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과연 온라인 수업이 성공적일까? 그것이 우리가 미래에 추구해야 할 교육일까? 만남이 제거된 비대면 교육이 과연 성공적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학교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로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은 학교를 폐교하기보다는, 작은 학교를 살려서 이러한 감염병에서도 최소한의 만남이 유지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큰 학교들을 작은 학교로 재배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교사 1인당 학생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학급당 학생수를 따져야 하고, 학급당 학생수를 15명 정도로 해서 과밀학급을 해소하고, 일대일 대면교육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적어도 이번 사태로 온라인 플랫폼에 열광하고, 그쪽으로 우 몰려갈 것이 아니라 학교 여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 교육에 대해 논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런 논의를 교육부에서, 또는 교육청에서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기에 이번 민들레 130호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기대에 맞게 민들레에서는 '온라인 수업, 그 후'라는 제목으로 여러 글을 실었다. 온라인 수업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는 글들이다. 읽을 만하다.
이번 호를 열면서 엮은이의 말이 가슴을 때린다.
'삶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긴급한 상황에서도 교육을 둘러싼 논의는 '입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5쪽)
교육과 입시가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시하고 있는 현실, 그래서 아이들의 건강보다도 입시를 생각해서 등교 개학을 하는 나라. 등교 수업을 해서 교육의 본질에 다가갔으면 좋았으련만, 입시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등교 수업이 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도대체 우리는 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가?
이 중에 정형철의 '장기 비상시대의 교육'이란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마음에 새겨둘 말이다.
재난의 정도에 따라 분명 고려하고 가늠해야 할 상황은 있겠지만 '만남의 교육'은 결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교육적 지향이다.
코로나 상황을 기회로 삼아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오로지 온라인 기반 비대면 교육으로 모든 교육적 논의를 몰아가려는 시도가 넘쳐나고 있다. '미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교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지우는 일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근본적인 논의 없이 온라인 교육의 확대만으로 장기 비상시대의 교육을 대비하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심도 있는 교육 콘텐츠가 마련된다 해도 비대면 교육이 지니고 있는 한계는 명백하다. (30쪽)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또 오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못한다. 이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는 일회적인 재난이 아니라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를 기회로 삼아 교육을 바꿔나가는 논의를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민들레 130호에서는 그런 논의의 시작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