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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에 물든 과학
조너선 마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이음 / 2017년 11월
평점 :
아직도 인종에 따라서 인간의 특성이 다르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인종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해, 나름의 합리성을 획득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러한 움직임과 더불어 인종에 따라서 능력이 다르며, 그에 따라서 차별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인종이라고 분류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이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가? 기껏해야 피부색? 피부색에 따라서 사람을 분류하기 시작하면 머리카락 색깔에 따라서 분류하는 것은? 또 눈동자 색깔로 분류하는 것은? 아니면 머리카락의 형태로 분류하는 것은?
아마도 머리 색깔로 사람을 분류해 흑발, 은발, 금발, 갈발(갈색머리), 홍발(빨간머리) 등으로 구분하고, 경제력과 정치력이 우세한 사람들을 주요 인종으로 하고, 나머지는 열등하다고 하면 그것을 따르겠는가? 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인종구분이니, 머리 색깔에 따라서 사람들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 옳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이 책은 여러 사례를 들어서 주장하고 있다. 거기다 인종주의자들은 아직도 과학계에서 퇴출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창조론자들이 과학계에서 거의 퇴출되다시피한 것에 비하면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지금 세계 곳곳을 보라. 특히 우리가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보자. 미국은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고도 한참 동안 인종에 따라서 엄청난 차별을 받았다. 그 차별이 1960년대에 들어서 형식적으로 없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은 일어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인종차별은 뿌리가 깊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이 책은 인종주의라는 말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종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종이라는 틀로 구별하고 틀지우는 것이 얼마나 문제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종은 공식적인 과학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과학자가 접근하기 힘들다. 인문학을 통해서만 역사적, 경험적, 정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진전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인간의 변이가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인종의 특징과 연결되는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이루어졌다. 103쪽.
이 말에 이어서 그는 '인간의 차이를 인종과 차별화해오면서 우리가 갖게 된 긍정적인 지식과 양자 간의 상호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1. 인간의 집단은 주로 문화적으로 구별된다.
2. 집단들 안에서의 변이가 집단 간 변이보다 훨씬 더 크다
3. 인간의 생물학적 변이는 분리적이지 않고 연속적이다
4. 인구 집단은 생물학적으로 실존하지만, 인종은 그렇지 않다
5. 인간 집단에는 만들어진 구성요소도 있다
6. 인구 집단을 무리로 묶는 것은 임의적이다
7.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8. 인종 분류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자연적인 생물학적 패턴을 반영하지 않는다
9. 인간은 유전자 변이가 거의 없다
10. 인종 문제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이지 생물학적이지 않다 104-114쪽.
이 점을 명심하면, 우리는 인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인종은 없다.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인간 집단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인종 이론이 예측하는 방식으로는 아니다. 과학이 인간 다양성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지식을 받아들여 학자의 전문 지식을 대체하는 데 사용할 때, 과학은 인종주의적이 된다. 인간의 변이를 연구하는 것은 사람들을 서로 다르게 만드는 자연적 패턴을 연구하는 것이다. 118쪽.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게, 아니 부끄러워서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창조론자들이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듯이 인종주의자들도 그렇게 되는 사회가 되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자. 인종은 없다. 인간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