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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인간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0
랠프 엘리슨 지음, 조영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랠프 엘리슨, 처음 들어보는 작가. 하긴 미국 작가 중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다른 책을 읽다가 이책에 대한 내용을 보고 읽어보고 싶어졌다.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니. 투명인간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니다. 투명인간 류의 소설이 아니다. 미국 흑인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떠한지를 남자 주인공을 통해서 보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연설을 잘해서 장학금을 받는 주인공. 백인들이 그를 초대한다. 연설이 훌륭했다고, 다시 그 연설을 들려달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간 곳에서 그가 맞닥뜨린 것은 배틀로열과 그를 모독하는 백인들의 괴롭힘이다.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마냥 갖고 놀아도 되는 존재로만 인식한다. 그에 합당한 돈을 주면 된다는 식. 장학금이라는 것도 그들이 베푸는 시혜에 불과하다. 위에서 아래로 철저하게 차등을 둔,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고 그럼에도 자신들의 관용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
그런데 주인공은 깨닫지 못한다. 그들에게 잘보이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대학 설립자 친구인 이사를 안내하는 일을 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잘보여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두 가지 실수를 한다. 그것이 실수일까?
백인 이사에게 흑인들이 사는 집을 보여주고, 그 집에서 겪은 일을 듣게 하는 일이 실수? 또 흑인들이 주로 모이는 술집에 어쩔 수 없이, 백인 이사는 위스키를 달라고 재촉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가 알고 있는 술집은 그곳밖에 없었으니까 간 것이 실수라고?
그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그 일로 인해 대학에서 퇴학당한다. 흑인 총장에게서. 취업을 알선받는 것처럼 속아서. 결국 흑인 총장은 피부만 흑인이지 살아가는 방식은 백인과 다를 것이 없다. 아니 백인보다 더하다.
파농 말에 의하면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인 것이다. 아니다. 이 소설의 흑인 총장은 이 말을 뒤집어야 한다. 그는 하얀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이 하얗게 된 것이다. 하얘지고 싶어서 자신의 출신을 잊고, 오로지 백인들의 구미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는 존재.
그것을 깨닫지 못한 주인공. 감지덕지하며 대학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로 북부로 떠난다. 북부에서 드디어 그들의 위선을 알게 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직도 그는 백인처럼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우연히 길거리로 쫓겨나는 흑인 노부부를 보면서 그는 연설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동지회에 가입하게 된다.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동지회. 그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새로운 이름을 그들에게 받는다. 이제는 하얗든 꺼멓든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는 일하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 제목인 '보이지 않는 인간'답게 주인공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존재하되 남들이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지회에서 이름을 받았음에도 소설에서는 그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아니 불린지는 몰라도 독자인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게 그만의 문제일까? 최근에 미국에서 일어난 플로이드 사건을 보라.
저항을 하지 못하는 사람 목을 눌러 질식해서 죽게 만든 경관들. 그 경관은 백인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흑인은 안전하지 못하다. 하나의 존재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니 2권 연보를 참조하면 이 소설은 1945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52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2권으로 넘어간다. 1ㅡ2권 세트로 책이 묶여 있으면 한 번에 쓸 수 있어서 좋을텐데, 그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