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는 질문은 인간의 특권이다. 인간만이 질문을 할 수 있다. 물론 언어를 통해서 말이다. 인공지능이 나와서 질문을 하게 된다면 인간이 지닌 가장 큰 특권이 사라지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입력이 곧 출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입력과 출력 사이에 다른 많은 활동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1을 입력했다고 1이 출력된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1을 입력해도 다양한 결과를 출력할 수 있다. 입력과 출력 사이에 질문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질문은 소중하다. 질문을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질문은 우리를 더욱 다양한 세상으로 데려가 주기 때문이다.

 

파블로 네루다. 그가 쓴 74개의 질문의 시를 묶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네루다는 시를 통해서 많은 질문을 한다. 그는 나이들어서도 닫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열린 세상을 본 것이다. 그것을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 질문을 하자. 질문을 억압하는 자는 닫힌 세상을 추구하는 자다. 그런 세상은 전체주의다. 질문이 봉쇄된 사회. 그 닫힌 사회는 독재가 횡행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질문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을 잘하는가? 예전에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할 때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특별히 질문 기회를 주었다고 하던데... 그때 제대로 질문을 한 기자가 없었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기자란 질문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 사람들조차도 질문을 잘 하지 못하면 누가 질문을 하지? 정답!! 시인!!!

 

이건 아니다. 시인들은 당연히 질문을 한다. 그래서 시를 쓴다. 그들에게는 입력과 출력 사이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 먼 거리에서 그들은 수많은 질문들을 하고 답을 찾고 또 그 답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를 반복한다. 그들은 단 하나의 답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되는 질문이 있는 답을 선택한다. 그런 존재가 시인이다.

 

이런 시인들이 존중받는 사회, 그런 사회는 자연히 질문이 많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74개의 질문 중에 44번 시를 인용한다. 이 시와 더불어 70번 71번 시도 읽어볼 만하다. 히틀러에 관한 질문. 그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 독재자들 섬뜩할 것이다. 하여간 44번 시를 보자.

 

       44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나간다면

왜 내 해골은 나를 좇는 거지?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질문의 책. 문학동네.2013년.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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