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2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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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쓰기다. 쓰기는 읽기다. 읽으면서 머리 속에 글을 쓴다. 그냥 글자만 따라가지는 않는다. 문자를 읽으면서 그 문자에 속한 또는 문자가 포괄하고 있는, 문자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자연스레 쓰인다.

 

마찬가지로 쓰기는 읽기다. 쓰면서 읽게 된다. 읽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쓰기와 읽기는 같은 행위가 된다. 그런데 왜 읽기와 쓰기를 할까? 그것은 자신을 알기 위해서다. 자신을 알고, 자신이 아는 것을 밖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구절이 이 책에 있다.

 

'독서의 목적은 생각하는 긴장과 외로움, 쾌락을 얻기 위함이다. 독서는 이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 독서는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다. 자기만의 사고와 태도, 시각은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다.' (121쪽)

 

혼자만 알고 있으면 읽기 단계에 머무를 수 있다. 그냥 읽는 것이다. 이때 읽기가 쓰기라고 했으니 어디에 쓰는가 하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쓴다. 자신의 몸에 마음에 쓰는 것, 그것이 바로 문자를 통해 남들에게 알리지 않는 쓰기다.

 

이것도 의미가 있지만 읽기가 남들에게 알려지는 쓰기로 전환이 되면 더 많은 파장을 만들 수 있다.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내 읽기가 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읽기로, 다시 다른 사람의 쓰기로 간다. 이렇게 읽기와 쓰기가 연결되면서 끊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지를 알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읽기와 쓰기에서 나온다. 무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읽기와 쓰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행할 뿐이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해결하기 어려운 권력은 '몰라도 되는 권력'이다' (178쪽)

 

바로 읽기/쓰기가 필요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냥 행한다. 그것이 잘못된 건지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지는 권력에서 비롯된다. 권력은 부패하기도 하지만 무지로 굳어지게 되기도 한다.

 

무지로 굳어진 권력은 자신들의 세계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행동한다. 그렇게 살아간다. 이 책은 이런 당연한 세계에 틈을 내고 있다.

 

정희진의 읽기가 쓰기로 전환되어 우리의 읽기를 촉발하고 다시 우리에게 쓰도록 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지의 세계, 당연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 구절을 보자.

 

'앎이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을 다르게 배치하는 것이다. 지식이 자료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진보(進/步)의 방식은 계속 걷기고, 보수(保/守)의 도구는 과거를 지키는 익숙함(진부함)이다. 쉬운 말은 지배자, 사기꾼, 게으른 이들의 언어다. ... 사회는 약자가 말만 해도 폭력으로 간주한다.' (165쪽)

 

결국 읽기가 쓰기로 나아가지 않으면, 익숙함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타인에 대해서 성찰할 기회를 잃는다. 왜 우리는 읽기와 쓰기를 통해서 타인이 되어야 할까?

 

'타인이 됨으로써 약자의 저항(탈전통)과 융합을 강조하는, 공동체의 원리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169쪽)

 

바로 우리가 홀로 살아가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기/쓰기는 공동체의 삶에, 자신의 지식을 재배치하는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을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로 바꿀 수가 있다. 우리는 나를 알기 위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알기 위해 읽어야 한다.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해줄 책만이 아니라 자신과 정반대에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책도 읽어야 한다.

 

아니, 좋은 읽기는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내가 안주하고 있던 세상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을 흔들지 못하는 읽기는 나를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정희진의 이 책을 읽으며 놓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 역시 무지와 당연 속에서 살고 있었음을. 그냥 내게 주어졌기 때문에 의식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좋은 읽기라고 생각한다.

 

정희진이 읽은 책을 평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 이 책이다. 수많은 책이 나오고, 많은 생각들을 만나게 되지만 주를 이루는 것은 여성에 관한 글들이 많다. 그 중에 몇 구절을 인용한다.

 

'여성 대상 폭력의 특징은 가장 죄질이 나븐 사례가 법으로는 가장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186쪽)

 

'차별은 심한데 인식이 낮은 사회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다. 남성의 자연스런 일상이 여성에게는 모욕, 차별, 생명위협이다. 남성은 자신의 행동에 대응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행복권 침해'로 생각하고 증오와 피해의식을 느끼기 쉽다.' (218쪽)

 

'여성 살해는 일상이 연결이자 수순이다. 성소수자나 '흑인'의 경우와 같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포기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225쪽)

 

'여성에 대한 폭력은 남성(아버지)들 간의 자존심, 자원, 욕망을 둘러싼 갈등을 여성의 몸에 실천하는 체계화된 사회 시스템이다. (227쪽)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살해들이 문제가 되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 그와 더불어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외침,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누군가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누구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생명이다. 약하다는 이유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생명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이 책을 읽어보라. 읽기를 통해 자신의 쓰기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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