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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지음 / 따비 / 2020년 4월
평점 :
제목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튜브와 책을 함께 놓고, 유튜브가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라고 묻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유튜브에 많이 접속하고 있다.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회계층, 취미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또한 전문분야에서도 유튜브는 책이 지니고 있던 자리를 넘보고, 또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런 제목이 나올 수밖에.
유튜브와 책은 정보와 오락 등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렇지만 유튜브는 영상매체에 들어가고 책은 인쇄매체에 들어가니 둘이 같은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방식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책이 좀더 고답적이라면 유튜브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책의 위치를 대신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이기도 하다. 신선하기도 하고, 짧고 재미있고 또 무엇보다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유튜브는 교육분야에도 진출해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교육은 책을 통해라는 말이 안 통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있다. 그러니 유튜브와 책이라는 두 매체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세대에서는 어떤 매체가 대세를 이룰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착각을 하게 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유튜브든 책이든 어떤 특정 매체의 장점을 들고, 그 매체들이 앞으로의 세계를 이끌어갈 거라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책 제목 밑에 색깔을 달리해서 붙인 말이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정리해주고 있다.
“삶의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리터러시란 말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으니, 예전에는 문식력이라고 했다는데 요즘은 문해력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말도 좀 어색하다 싶을 땐 그냥 리터러시라고 하는데, 여기서 리터러시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그 말의 뜻에 맞게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리터러시란 단지 말의 뜻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우리들 삶이 리터러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앎을 위한 읽기가 아니라 삶을 위한 읽기고, 단지 리터러시에는 글자로 표현된 인쇄매체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삶에는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고, 거기에 맞는 다양한 매체들이 있기에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말이 리터러시다. 이것을 우리말로 멋지게 바꾼다면 더 좋겠지만, 그 지난하고 오랜 세월을 용어 정립에 쓰지 않고 있으니 그것도 문제다. 적어도 우리가 아, 그런 의미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용어로 바꾸었으면 좋겠는데.. 그나마 문해력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으니 뭐,,,
리터러시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립된 개체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사회를 벗어나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혼자 있어도 이미 내 주위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있기에 리터러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리터러시는 나와 남을 잇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엄기호와 김성우는 리터러시를 바벨탑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벨탑은 자신들의 언어에 갇혀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보고, 다리는 다른 존재들이 소통하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는 나만의 벽을 쌓고 그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 서로 교류를 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리터러시가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정현종 시인의 ‘섬’이란 시가 떠올랐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아주 짧은 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러나 그 섬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찾아지지 않는다. 타인을 타인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빈 공간이 보인다. 그 빈 공간이 단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다. 다리의 역할은. 그런 곳으로 서로를 가게 만드는 것. 그래서 리터러시는 ‘다룸’이라고 한다. 내가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루는 것. 즉 매체에 따른 표현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다룸’이다. 그렇다면 ‘다룸’이 있기 위해서는 ‘다름’이 있어야 한다.
즉 ‘다름’을 인정해야 ‘다룸’으로 갈 수 있다. 나는 너와 다른 존재라는 것, 너는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 그러나 너와 나는 모두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 여기서 리터러시는 윤리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해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과 다르다. 너에게 전적으로 내 마음을 넘기는 것이 공감이라면, 이 공감에서는 다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냥 하나됨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해도 없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해는 다름에서 시작한다. 다름인데 그것 나름대로 존재 의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윤리의 핵심이다. 나와 같은 사람만 있다면 윤리는 필요 없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그냥 하나일 뿐이니까.
윤리는 하나가 아님을 인식하는 순간 나올 수밖에 없다. 하나가 아닌데 함께 해야 할 때 서로가 소통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 이것이 바로 윤리다. 이런 윤리 속에서 표현과 이해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표현과 이해를 우리의 삶과 관련지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한다.
바로 삶을 위한 리터러시여야 한다고 한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 타인의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윤리적 주체가 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191쪽)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리터러시의 정의에서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유튜브든 책이든 또는 말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이해에서 더 나아가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즉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제목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멀티리터러시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더 어울린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을 발견하고 그 섬에서 소통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다리를 만드는 매체는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다리가 크고 넓고 튼튼한 다리여도 되지만 왠지 내게 리터러시란 징검다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만드는 많은 물량과 노력이 드는 다리가 아니라 내가 혼자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위해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놓는 징검다리. 상대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징검다리를 놓고 온다. 그래서 서로가 노력한 결과로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다. 소통하는 장소. 여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리터러시고, 징검다리로 비유하자면 징검돌에 다양한 것들이 쓰일 수 있듯이 매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떤 특정한 매체가 우위에 서는 시대를 상상하지는 말자. 그냥 우리가 어떤 매체든 다른 존재와 만나기 위해 나아가는 징검돌로 매체들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책이 끝나가는 부분에 김성우가 리터러시에 필요한 요소를 일곱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조망, 일상, 반복, 관계 윤리, 교차, 호흡 (262-270쪽) 이 말들이 의미하는 것은 해당 쪽을 보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특정한 매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배운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꼭 들어야 할 요소들이 바로 이 일곱 가지임을 생각하게 한다.
김성우의 정리에 이어 엄기호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삶을 위한 리터러시란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입니다.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삶을 억압하는 리터러시가 아니에요. ‘좋은 삶’을 생각하도록 모두를 초대하는 것이 삶의 리터러시입니다. 이런 점에서 리터러시는 모두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로운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리를 놓으면서 그것이 바로 ‘좋은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 (277쪽)이라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리터러시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칼로 무 썰 듯이 싹둑 잘라버리는 표현들은 결코 리터러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만이다. 리터러시의 부재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는 리터러시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할지도 모른다.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다른 존재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자세를 지니는 것. 여기서 리터러시는 출발한다. 내 말이 옳다가 아니라 네 말을 들어 보자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런 다름을 다룸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 그런 리터러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 책은 읽기(리터러시)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