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졸업 - 소설가 8인의 학교 연대기
장강명 외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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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을 기획한 사람은 세 가지를 작가들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의 기본 방향인데...

 

1.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합니다. (중학생이어도 좋습니다.)

2. 르포 문학을 추구합니다. 가능한 직접 겪은 일이나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자기 시대에만 잠시 있었고, 그래서 내 세대만 알았던 무엇인가를 기록해 주세요.

3. 르포를 추구한다 해도 당연히 소설입니다. 자신의 학창 시절을 소재로 단지 한 편의 소설을 써 주세요. (401-402쪽)

 

얼핏 보면 2와 3은 모순되는 것 같은데, 사실 중심은 3에 있다.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르포 문학의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학교를 소재로 소설을 쓴다면 어떤 것을 써도 르포 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 학교는 지금도 비정상이 정상인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학교다. 그러므로 이상한 일을 써도 소설이 된다. 픽션이 된다. 그 픽션이 팩트와 결합해 팩션이라는 독특한 말을 성립시킨다. 이게 학교다.

 

아홉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고 한다. 소설집은 시대를 역순으로 배치했다. 2015년에서 1990년으로 25년, 약 한 세대를 거슬러 가면서 학교를 이야기한다. 아니 그런 비정상의 학교에서 살아남은 학생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읽으면서 학교는 여전하구나, 여전히 비정상이구나 하는 생각, 나 역시 살아남기에 급급했구나 하는 생각. 그러면서도 살아남았음을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여전히 학교에서 살아남으려 기를 쓰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라는 좁은 문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그 좁은 문으로 와 몰려들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는 좁은 문에 한 명이라도 더 들어가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에 다른 것들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데, 달랑 1년을 두고도 쉬지 못하는 아이들, 갭이어(gap year)는 상상도 못하고, 기껏 자유학년제라고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나라. 아마도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입시에서 가장 멀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좁은 문은 통과해야 할 문이고,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허용이 되는 사회인 것이다. 이런 학교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정상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자기가 발음을 잘못하면서 잘못된 발음을 따라한다고 야단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학교 현실이 너무도 잘 드러나 있는데, 어떻게 하나같이 교사들이 비정상으로 나오는지... 그나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사들은 학교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쫓겨나거나 자신의 발로 나가거나. (전혜진, 1995년. 비겁의 발견에서 송선생, 김상현, 1990년. 나, 선도부장이야에서 오선생)

 

이 두 소설에서 나오는 그나마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소수의 교사말고는 모두가 체제에 순응하거나 오히려 학생들을 억압하는 존재로 나온다.

 

('장강명. 2015년.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에서 급식비리를 저지르고 그를 무마하려는 학교의 모습, 이사장을 비롯해, 교장, 교감 등등 정말 비리 덩어리 교사들이 나온다. '이서영, 2001년. 3학년 2반'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교사들이 나오고, '김보영, 1992년. 11월 3일은 학생의 날입니다'에서는 학생회 활동에 대한 탄압, 또는 학생 자치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교사들이 등장한다. 25년이라는 편차에도 자신들만이 겪었던 일이라는 게 없다.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무슨 데자뷰를 보듯이 비슷한 일을 겪고 그 곳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소설집 제목이 [다행히, 졸업]이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는, 학교에 갇혀 지내는 학생들 모습이 우리에 갇혀 사육되는 가축들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있는 학교에서는 눈에 보이는 폭력이, 공부를 잘한다는 부유하고 능력있는 집안의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난무함을 (정세랑, 2000년. 육교 위의 하트) 알 수 있는데,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쉽게 폭력을 쓰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비열했다. 정교한 방식으로 비열했다. (224쪽)

 

비정상적인 학교에서 비정상적인 존재는 교사만이 아니다. 학생들도 비정상적으로 물들어간다. 그것이 단순하냐 복잡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사회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결국 학교는 우리 사회의 비틀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는 아이들, 그것도 인간답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아이들. 그런 모습을 작가들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이 겪은 학교에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함을, 그런 결심을 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그렇게 우리가 지내왔음을 이 소설집은 보여주고 있다.

 

언급 안한 작가들도 있어서 그 작가들과 시대, 제목을 언급하며 글을 마친다.

 

김아정, 2010년. 환한 밤.

우다영, 2004년. 얼굴 없는 딸들

임태운, 2002년. 백설공주와 일곱 악마들

 

임태운의 소설은 명랑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야자에서 도망쳐 길거리 응원을 하는 모습을 경쾌하게 담아내고 있는데... 김아정과 우다영의 소설은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그들이 겪는 내면의 모습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한편 한편 읽으면서 학교로 과거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그럼에도 과거 여행이 아니라 현재 학교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이게 현실인 것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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