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보들레에르 지음 / 자유교양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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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파리의 우울'을 읽은 다음 '악의 꽃'을 읽다. 아주 오래 전 그것도 프랑스 시인의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읽으니 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라기 보다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것과 또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에서 차이가 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시는 보편적인 인간 감성을 노래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극복해 내기도 하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보들레르가 시인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집의 첫 부분 제목이 '우울과 이상'인데, 우울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거리를 느낄 때 찾아오는 것,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을 추구하지만 이상 세계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 간격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우울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우울은 민감한 감성의 소유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사람, 어느 한 쪽에도 완전히 빠져들 수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며, 또한 자기 뜻대로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도 아닐 테니, 우울은 시인들에게는 천형과도 같은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시인들 대다수가 이러한 우울을 기본 감성으로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그가 시인을 사로잡힌 알바트로스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알바트로스를 신천옹(信天翁)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 시집에서도 알바트로스를 신천옹이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알바트로스는 바로 시인이기도 하다.

 

  신천옹(信天翁)

 

흔히 재미삼아 뱃사람들은

커다른 바닷새, 신천옹을 잡는다.

태평스런 여행의 이 동반자는

깊은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른다.

 

일단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들은 어색하고 수줍어

가련하게도 크고 흰 그 날개를

노처럼 그들 옆구리에 끌리게 둔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어설퍼 기가 죽었는가!

전엔 그처럼 아름답던 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추한가!

어떤 친구는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을 올리고

다른 친구들은, 창공을 날던 이 병신을 절름대며 흉내낸다.

 

시인도 구름의 왕자와 같아서

폭풍우를 다스리고 사수(射手)를 비웃지만

야유 소리 들끓는 지상으로 추방되니

거대한 그 날개는

오히려 걷기에 거추장스러울 뿐.

 

보들레르, 악의 꽃, 김인환 역,자유교양사. 1993년 중판. 24쪽.

 

현실에서 시인이 처한 위치, 다른 사람들이 시인을 대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뱃사람에게 잡혀 날지 못하고 있는 새.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날기를 꿈꾼다. 비록 몸은 지상에 묶여 있지만 언젠가는 창공을 훨훨 날아 이 지상을 내려다 보기를 바란다.

 

그러니 우울할 수밖에. 지상의 추함에,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 하여 그는 거리의 여인들, 거리의 사람들을 시로 표현한다. 그들을 두고서는 홀로 날아갈 수가 없기에. 그러니 우울은 그의 시를 관통할 수밖에 없다.

 

'악의 꽃'

 

프랑스에서 필화 사건을 겪은 유명한 시집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표현의 강도가 그리 심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 시대에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시대를 넘어서려고 하는 존재, 시인.

 

지금도 수많은 시인들이 있고, 그들 역시 이렇게 현실과 이상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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