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함께 하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통찰. 글로 쓴 사진이란 책을 읽으며 이렇게 주의 깊게 주변을 보는 모습에 감탄한다.

 

그것도 주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글로 남겼다.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사진이 하나 있고, 그 사진에 관한 글이 펼쳐질 줄 알았다. 글로 쓴 사진이란 제목을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굳이 사진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읽으면서 장면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칼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흑백으로 떠오른다. 흑백, 무언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색조다.

 

존 버거의 글이 그런 흑백 사진을 연상시키고, 우리들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보다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자기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글을 읽다가 아, 이런 의미로 이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하철 역에 있는 횟대 같은 의자였다.

 

유모차의 여인이란 글에 나오는 말인데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 7호선에서 보게 된 의자 비슷한 것,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었다.

 

런던 지하철역에 새로운 설비가 들어섰다. 승객이 앉아서 기다리던 벤치들을 없애고 대신 비스듬히 서서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일종의 횟대 모양의 버팀대를 설치한 것이다. 노숙자들이 더 이상 벤치에 누워 잠들 수 없도록 한 탁월한 구상이었다. (34쪽)

 

설마 우리나라도?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공원 벤치를 구획한 칸막이가 도처에 있는데, 이것이 노숙자들이 누워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아니면 도시의 미관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해도 자꾸만 아닌 쪽으로 가는 이유는?

 

내가 그냥 지나쳐가던 것에 대해서도 존 버거는 주의 깊게 살핀다. 그것도 주류가 되지 못한 또는 주류가 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세상은 단 하나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니.

 

이 책에서 또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어진다. 우리들 얼굴. 그 얼굴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물론 사람 나이 40정도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븐 알 아라비(이슬람 신비주의자)가 했다는 말인데..

 

"내게는 이제까지 살았고 앞으로 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아담의 때로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113쪽)

 

우리 얼굴에 이렇게 인류의 얼굴이 겹쳐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 얼굴이 바로 자신임을, 그냥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는지... 버거의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