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니 알겠다. 지구는 이제 하나의 제국(諸國)이 되었음을. 제국(帝國)이 아니라 제국(諸國)이다.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지구가 이젠 아니라는 것을. 

 

  감염병에 국경이 없듯이, 한 나라에 감염병이 퍼지면 대책을 모든 나라들이 함께 세워야 한다. 그런데 어느 한 나라가 제국(帝國)처럼 군림해서 모든 국경을 폐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들만 살겠다고 국경을 폐쇄하는 일들이, 그런 제국(帝國)의 행태를 보이는 나라도 있기는 하니..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기들만 폐쇄된 공간에서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영화 '월드 워 Z'를 보면 좀비들이 계속 나타나고 번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장벽을 설치한다. 자신들은 안전할 거라고 믿고. 결과는? 장벽은 여지없이 돌파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제국(帝國)이 아닌 제국(諸國)으로 변한 현 시대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국(帝國)의 모습을 지니기도 한다. 자신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그런 행위들을 하기도 한다.

 

하종오 시집 [제국]에서 시인은 '제국(諸國)은 공존해야 하고 제국(帝國)은 부재해야 한다' ('자서'에서)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적을 지닌 사람들의 문제다.

 

사람들도 출신 나라를 기준으로 국경이 있는지, 위계가 생기고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지배하는 제국(帝國)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열광했지만, 그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이주민들일 것이다. 또다른 기생충들. 우리 눈에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를 이 시집은 생각해 보게 한다.

 

어쩌면 우리 안에 제국(帝國)에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한... 시집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한 '만인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여야만 제국(帝國)이 아닌 제국(諸國)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떤 시를 인용해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는데... 시집 처음에 나오는 시를 보자. 우리는 정말 이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도대체 제국(帝國)이 아닌 제국(諸國)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공존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시.

 

제국(諸國 또는 帝國)의 공장

                - 소액주주들 

 

대주주인 미국 모회사(母會社)가

한국인 노동자들 농성하고 있는

자회사(子會社) 전자제품 조립공장을 폐쇄하고

중국에 이전한다는 보도 나오자

비로소 주가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폭설이 내렸다

먼 친척들이 그 공장에 근무하여서

안심하고 주식 샀다가 돈 날릴 뻔한

한국인 개미투자자들은 가슴 쓸어내렸고

생산라인 멈추고 제품 만들지 않으면

임금 인상 요구조건 들어주리라 기대했던

한국인 노동자들은 가슴 무너졌고, 폭설이 내렸다

농성하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들 중에서

자사주(自社株) 가진 소액주주들은

대주주인 미국 모회사가

자회사 전자제품 조립공장 폐쇄한다는데도

주가가 마침내 상한가로 올라가서

개인 자신이 증가하니 어리둥절했고, 폭설이 내렸다

 

하종오, 제국. 문학동네. 2011년.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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