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외로움을 견디는 나이 아름다운 청소년 9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재경 옮김 / 별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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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의 소설을 읽다. 청소년 소설이다. 배경이 환상적인 세계가 아닌 바로 현실이다. 미국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주인공.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남들과 똑같이 살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고민하는 청춘이다. 그냥 미국 고등학생처럼 차에 미치거나 여자에 미치거나 남들처럼 지내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평범에서 벗어났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는, 생각이 많은 주인공은 일상의 평범함을 견디지 못한다. 남들에게 이해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혼자 지낼 수도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남들과 지내기도 한다.

 

소설은 첫부분에서 이런 나이 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이들은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아이들은 아직 배운 게 없어서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할 줄 모른다. 그런 능력은 나중에 생긴다. 아이가 인간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 그래서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무리를 찾아 허둥지둥 돌진한다. 클럽, 팀, 동호회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남들과 똑같이 입기 시작한다. 혼자 튀지 않으려는 방편이다. (10쪽)

 

우리가 흔히 사춘기라고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다. 자아의식이 생기는 때다. 그런데 자아의식이 생기면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려 할 텐데,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이 두려움 때문에 남들 속에 묻히려 한다. 또래 사이에서 튄 행동은 금물이다. 그냥 함께 휩쓸려 지낸다.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아니,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은 이와 반대다.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울리는 흉내는 내지만 진정으로 어울리지는 못한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거부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으로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 오언은 분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주인공인 오언의 부모님은 자식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튀지 않고. 그냥 그렇게 무난하게 살기를. 오언 역시 가정에서 부모님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이렇게 무기력하게 고민 속에서 허우적 대는 오언에게 한 사람이 다가온다.

 

나탈리다. 이미 자신의 길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이 있는 아이. 이 나탈리와 어울리면서 오언은 많은 고민을 떨쳐내기도 하지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과 우정. 청소년기에 맞닥뜨리는 요소다.

 

남녀간에 육체적인 접촉이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미국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몸을 중시한다. 대부분 여학생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오언 역시 나탈리를 사랑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탈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단순한 육체적 접촉으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접촉은 사랑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 나탈리에게는 명확한 선이 있다. 이 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오언은 방황을 하고.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평범함 속에 넣으려고 한다. 그러다 다시 만난 나탈리. 그 전에 나탈리와 처음 바닷가로 놀러 갔을 때 장면, 이 장면에서 깨달은 것이 나중에 오언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작동을 한다.

 

우리는 인생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생은 답이 아니니까. 인생은 문제다. 그리고 각자가 답이다. 우리 앞에 바다가 있었다. (62쪽)

 

이런 깨달음을 얻었지만 완전하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탈리와 두번째로 바닷가에 간 다음에 오언은 방황을 한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언이 스스로 결정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에 관련된 일은 함께 결정해야 하는데... 나탈리는 그 점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차분히, 꾸준히 준비를 하고 그 길을 가고 있다.

 

그 점을 나탈리가 출연하는, 또 나탈리가 작곡한 곡이 발표되는 발표회장에서 오언 역시 깨닫는다. 그가 흘리는 눈물. 그리고 다시 나탈리와의 만남. 여기서 오언은 결정한다.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

 

그렇다. 인생은 문제일 뿐이고 답은 자신에게 있다. 부모가 대신 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때 자신은 고립된 자신이 아니다. 함께 해야 할 사람들, 여기에는 부모 역시 포함이 된다. 아직 부모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부모들을 재단했지만, 문제를 꺼내놓자 해결책이 마련된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행위인지를 오언의 대학 입학에 관한 표현에서 알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꺼내놓아야 해결될 수 있음도.

 

홀로가 아니라 함께. 그렇게 오언은 자신의 길을 간다. 열일곱. 외로움을 알게 되는 나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야 할 나이. 이 외로움을 견뎌냈을 때 이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주인공이 창조해 낸 소언이라는 곳. 나탈리는 이미 오언이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혼자... 그러기에 그곳에 방문객을 받으라고 한다. 그것이 오언에게 맞는 삶이라는 것. 굳이 그들과 똑같이 살려고 하지 말라고 나탈리는 충고한다.

 

이렇게 나탈리와 오언은 자신들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짧은 소설이고, 외적갈등보다는 내적갈등이 더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앞날을 고민하는 청춘이라면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오언에게는 공감을, 나탈리에게는 부러움을 느끼고 감탄을 하면서.

 

르 귄의 대표작을 '어스시(Earthsea)' 시리즈로 꼽기도 하는데, 땅과 바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언은 바다에 가서 인생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힘을 주는 존재인 나탈리의 성이 필드다. 땅을 딛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것. 청춘들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이런 낱말을 통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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