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임헌영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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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거대 담론보다는 미시 담론이, 그래서 미시사라고도 하고 생활사라고도 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연구 방향도 거대한 흐름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로도 많이 흘렀고.

 

그렇다고 미시사로만 역사가 구성되지 않는다. 이런 미시사들이 모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역사 연구는 학자들이라는 전문가 속에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결국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고 미래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니까 미시와 거시가 함께 잘 어우러져야만 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소소한 세계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거창한 흐름만 표현할 수도 없다. 거창한 흐름 속에서 소소한 일상들이 제대로 표현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이 책은 그런 작품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다. 평론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 소설에 나타난 정치 현실 또는 작가들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평론을 통하여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지금-여기'일 터이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를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라고, 자신은 이런 작품들을 이렇게 읽었다고. 단지 읽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삶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작품들이 나오는데, 그동안 읽지 않았던 작품들도 꽤 등장한다. 아주 오래 전 작가라고만 여기고 묻어두었던 작가들, 그냥 그런 작가라고만 생각했던 작가들의 작품도 나온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읽고 싶어지게 한다.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선구적으로 비판했던 작품은 남정현이 쓴 '분지(糞地)'다. 미국을 이렇게 대놓고 풍자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 필화 사건에 휘말렸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 작품만 기억하던 나로서는 남정현이 '허허선생' 연작으로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풍자라 함은 비꼼인데,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비꼬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비꼬아 그 사람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군림했던 미국과 또 그에 추종하던 사람들을 풍자한 남정현의 소설은 당시 우리 사회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당시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실을 이야기할 때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 때 문학적으로 어떤 장치를 이용해 표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이런 작품뿐만 아니라 최인훈의 작품도 마찬가지고... '총독의 소리'나 '주석의 소리'를 보라. 얼마나 당대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지. 이렇게 많은 작가와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 다시 주목하는 작가가 이병주인데... '지리산'의 작가로만, 또 보수적인 작가로만 알고 있던 이병주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박정희에 대해서 꽤 비판적인 작품을 썼다는 것. 그런데도 이병주를 1970년대 이전의 작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해준다. 물론 이병주는 박정희와도 잘 어울렸지만 5.16쿠테타 직후 감옥 생활을 하게 되어 반감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반감이라고 해서 다 소설이 되지는 못한다. 그는 많은 자료를 모아 5.16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지만, 소설을 통해서 역사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는 있다. 그렇다면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소설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데, 그 작업을 이병주가 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역사가 아닌 소설, 그래야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이다.

 

(이병주가 쓴 작품인 ['그'를 버린 여인], [그해 5월]을 읽어보면 소설 속 인물로 표현된 박정희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밖의 다른 인물들도.)

 

여기에 더불어 박화성과 한무숙이라는 작가에 대한 글을 통해 우리 소설에 대한 지식의 폭을 좀더 넓힐 수 있다.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 현실을 잘 반영한 소설들을 들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사회 속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활인이자 정치인이다. 정치가 그들의 삶에서 사라질 수가 없다.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정치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들을 통해서, 당시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파악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지금 우리나라 정치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관심이 있으면 찾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관련짓게 된다. 우리가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인간은 원초적으로 경제인이지만 정치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런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소설들을 통해 지금-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는 듯하다.

 

평론집, 안 읽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그만큼 문학에서 멀어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소설을 읽어 봐야겠다는, 소설이 우리 사회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어, 소설을 통해서 나를, 우리 사회를 발견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뱀발

 

이 책을 읽으면서 지식나부랭이에 해당하는 작가들의 가족관계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인데... 박화성의 아들이 천승세인것, 그리고 한무숙과 한말숙이 친자매지간인 것. 여기에 한묘숙이라는 자매가 있는데, 이 분의 활동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되는 호기심을 갖게 되고... 임헌영 평론가가 남정현, 이호철, 최인훈과 어울리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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