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돌고 돌아 기쁨이 된다면 좋겠지만, 슬픔은 돌고 돌아도 슬픔이다. 자전을 하면 낮과 밤이 생기듯이 기쁨의 구간을 통과하기도 하겠지만, 결과는 뫼비우스 띠 위를 달리는 것처럼 다시 제 자리.

 

  슬픔의 자전은 슬픔으로의 회귀다. 그렇지만 슬픔으로의 회귀라고 해도 마냥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낮이 자전해선 낮으로 돌아오고, 밤이 자전해서 밤으로 돌아오지만, 자전한다는 것은 다른 세계를 거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한 바퀴 돌았을 때 다시 원점으로 온 것 같지만, 자전은 공전과 더불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지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의 자전은 똑같은 위치에 있는 슬픔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슬픔은 끝없이 반복이 된다. 무한반복. 영원회귀라고 할 수도 있는 슬픔의 자전. 그 슬픔으로 인해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슬픔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슬픔으로도.

 

슬픔을 슬픔으로 깨닫고 함께 할 수 있다면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을텐데... 그 말이 그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슬픔을 한사코 함께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그럼에도, 늘 우리는 그래도 또는 그럼에도 라는 말로 세상을 좀더 밝게, 기쁨 쪽으로 밀어갈 수가 있다.

 

제목이 된 구절이 들어 있는 시를 본다.

 

슬픔의 자전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

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

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

 

아이는 텅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

 

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끊어질 듯 말 듯 떨리는 사과 껍질

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다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

둥굴게 툭툭,

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사과 조각을 넣어준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2018년 1판 7쇄. 90-91쪽.

 

남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 시인만이 지닌 감수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감수성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시인의 말이 감동적이다. 오히려 시인의 말이 한 편의 시다. 그 중에 두 연을 인용한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2연)

 

내 슬픔의 무게를 나누어 져주는 (5연 일부)

 

그래, 이렇게 슬픔의 무게를 나누어지면 슬픔의 총무게는 줄지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으로 남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

 

슬픔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시. 그리고 다른 시들을 통해 슬픔을 만나게 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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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0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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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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