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옷을 벗어라 - 법정스님 미출간 원고 68편 수록
법정 지음 / 불교신문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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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옷을 벗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낡은 옷을 걸치고 있으면 자신은 어떨지 몰라도 보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감화시킬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낡은 옷을 이미 벗어버렸어야 할 옷이기 때문이다. 버렸어야 할 것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낡은 옷을 입은 사람은 법정 스님하면 떠오르는 말인 '무소유'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무소유가 아니라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스님은 자신의 삶 속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려고 또 실천하라고 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지 않아도 될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하니, 우리가 옷을 안 입을 수 없듯이, 스님들이 승복이라는 일종의 제복을 거부할 수 없듯이 꼭 필요한 것들은 당연히 소유해야 하지만, 버려도 될 것들은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신 지, 열반에 드신 지 10주년을 맞아 불교신문사에서 추모집으로 발행한 책이 이 책이다. 행여 이 책이 낡은 옷에 해당하지 않을지 걱정도 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모든 옷이 낡은 옷이 되지 않듯이, 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는 보석이 있듯이, 연륜이 묻을수록 더욱 신뢰를 주는 얼굴이 있듯이, 스님의 이 글들도 세월이 흘렀어도 낡은 옷이 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계속 입고 싶어지는 편안한 옷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까? 아주 오래 전에 쓴 글들이지만 지금도 생각할 것이 많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도 한다.

 

불교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스님의 비판적인 글이나 불교대학을 표방한 동국대학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스님의 의견, 또 불경을 번역하는 일에 대한 스님의 관점 등이 지금 읽어도 그렇게 낡지 않았다.

 

물론 동국대학교에 관한 글은 지금 동국대학교를 생각하면 이제는 별 의미가 없어 벗어버려야 할 낡은 옷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불교대학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여전히 불교계에서는 입어야 할 옷이라는 생각을 한다.

 

불경을 번역하는 일은 지금도 유효하다. 읽지 않는 경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전은 성인의 말씀을 적어놓은 글인데, 경전을 읽음으로써 성인의 말씀을 듣게 되는데,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읽지 못했는데, 1960년대에 불경 번역을 시도하는데, 거기에 대한 법정 스님의 의견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경전 번역에서 중복을 피하고, 한글로 번역을 하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야할 것. 또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러 사람이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번역할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경전을 읽고 부처에 귀의할 수 있게 할 것인데, 여기서 부처에 귀의한다는 의미는 부처를 섬긴다는 뜻이 아니라 부처가 말한 것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절이나 부처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에서 부처가 말한 바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에 귀의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으니...

 

스님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한 것도 부처의 삶을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법정 스님 원적 10주기 추모집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책. 꼭 10주기가 아니어도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낡은 옷을 입고 있나 생각하게 되니까.

 

나 역시 낡은 옷을 벗어버려야겠다. 낡은 옷에 집착하는 그런 삶이 아닌지 반성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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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9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규원 2021-05-0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고견을 풀어내는 솜씨가 부럽습니다

kinye91 2021-05-08 05:32   좋아요 0 | URL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