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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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남미 페루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소설이다. 사실이라고 해도 소설로 창작이 된 이상 소설이라고 해야 한다. 소설을 가지고 사실이다 아니다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소설로 창작이 되었다는 것은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란 뜻이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러므로 현실이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 간접체험을 할 수 있으므로. 그 간접체험으로 우리가 삶에서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으므로.

 

작가는 분명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또 소설 속의 인물은 현실의 삶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6쪽.서문)고 하고 있다. 즉, 사실에 기반하지만 소설을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그런 간접체험을 했다면 현실은 소설에서 벗어나 자신의 체험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럼에도 이 소설 제목에 있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두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부정부패와 독재로 얼룩졌던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 소설 주인공인 판탈레온을 보면서는 독일 나치스의 아이히만이 생각났고, 특별봉사대는 일제 군위안부를 떠올리게 했다.

 

세상에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미치도록 잘하는 인간이 있는데, 그것이 유대인 학살을 용이하게 했던 존재가 아이히만이라면,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라. 그는 자신이 한 일에 일종의 자부심마저 지니고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그런 자부심.

 

이 소설에서는 군위안부를 특별봉사대란 이름으로 조직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판탈레온 대위가 그런 존재다. 그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그것도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평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임무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과연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바람직하지 않은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명령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오로지 주어진 일을 잘 하기를 바랄 뿐이다. 거기에 도덕관념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히려 효율성만을 따진다. 군인들이 민간인을 강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봉사대를 조직하여 그들의 성욕을 해소하게 한다. 그것도 잘하기 위해서 횟수, 시간 등을 통계내고 먼저 흥분하도록 책자를 제공하는 일까지 한다.

 

그에게는 오로지 특별봉사대원들에게 군인들이 성욕을 해소해서 민간들을 강간하는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러나 역사적으로 군대를 따라다녔던 위안부들의 존재를 이토록 잘 드러낸 소설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소설은 결코 무겁지 않다. 아주 가볍다. 유머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광신도들이 십자가에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들을 매다는 장면에서도 긴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가벼운 문체로 넘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광신도와 특별봉사대. 아마존 밀림에 존재하는 그러나 소위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져야 할 존재, 가려져야 할 존재들. 이 두 존재들과 여기에 관계된 인물들이 모자이크 식으로 소설 속에서 짜여져 있다.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가 섞여서 나오는데, 그렇다고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게 되지는 않는다. 여러 이야기가 막 섞여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인물들의 특성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대신 무겁지 않게 비극적인 사건에 다가가게 된다. 읽을 때는 무겁지 않게 아주 경쾌하게 소설을 읽어가지만 읽고 나서는 많이 무거워진다.

 

세상에 아이히만과 같은 존재를 주인공으로 만나는 소설을 읽고 어떻게 가벼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에 이렇듯 최선을 다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하고 본인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소설 속에서 한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그 자는 그걸 엉망으로, 그러니까 아주 불완전하게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바보는 특별봉사대를 육군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272쪽)

 

사실 우스꽝스런 정책을 입안하는 지도층을 비아냥거려야 하는데,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현되도록 하는 중간관료들이 있다. 그런 관료들로 인해 말도 안되는 정책이 실행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휩쓸리게 되는데, 소설 속 인물인 판탈레온 대위 역시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그에게는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거나 그것을 고의로 태업을 함으로써 좀더 바람직한 정책으로 바뀌게 할 생각, 능력이 없다. 이런 인물들로 인해 잘못된 정책이 잘 시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일의 전모가 드러나면 지도층은 부인하기 일쑤다. 군위안부 문제를 보라. 군에서 분명 관여를 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판탈레온은 비밀로 하라는 명령을 미스 브라질의 죽음으로 어기게 되는데, 이때 군부에서는 우리가 익히 일본 군부, 정부가 한 반응에서 알 수 있는 일들을 똑같이 한다.

 

"특별봉사대라고 일컬어지는 조직은 그 어떤 경우에도 군사 기관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민간 거래업체로 임시로 우연히 군에 의해 묵인되었을 뿐 군의 지원을 받지도 않았고, 군 당국에 의해 공식화되지도 않았으며, 군과 그 어떤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329쪽)

 

어찌 이리도 똑같을 수 있을까? 마치 작가가 우리나와와 일본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판탈레온 대위도 특별봉사대에 관한 문서들, 자료들을 모두 없애버리지 않는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정책을 이렇게 가려버리고 부인해 버리는 것. 그리고 책임을 상층부가 지는 것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한 관료들에게 지우는 것. 이것이 바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점들을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처해 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참으로 섬뜩하다. 소설 속에서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판탈레온이라는 실행자를 주인공으로 소설이 전개되었기 때문이지만, 끝부분에서 부분부분 드러나는 특별봉사대원들의 삶은 결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고 많은 생각과 토론이 필요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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