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작은 제목이 책 표지에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환자에게 과연 의학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의학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다. 그런데 살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 불치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현대의학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연명치료라는 말이 먼저 생각나는데, 죽지도 못하게 하는 현대의학기술. 과연 그런 기술로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런 삶의 연장이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이게 도와주는 의료행위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주장을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현재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에 놓이고 싶지 않은지를 대화를 통해서 서로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기기들로 연명하는 치료가 아니라 환자의 삶이 최후까지 인간다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의학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요양원이 왜 문제인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도 요양원에 들어가면 곧 죽을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 이유는 요양원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요양원의 규칙대로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라서만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자율적 존재인데, 그 자율성을 치료라는 목적으로 박탈당한 사람들이 지니는 상실감은 심리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요양원에 들어가면 급속도로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다시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요양원은 그동안 살아온 장소에서 그 사람을 떼어내 전혀 다른 자유가, 개인의 사생활이 전혀 보장이 되지 않은 공간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요양원보다는 나은 곳이 미국에서는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이라는 곳이다. 사람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곳. 그러나 지금은 많이 상업화되어 요양원과 비슷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사람들이 살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장소들이 많이 생겨나고 호스티스 케어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의료행위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호스티스 케어라고 하면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호스피스 케어는 그 사람이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돕는 의료활동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의료 행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해오던 생활, 또는 자신이 꼭 해야만 한다고 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수술한 다음에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끝을 알고 그것을 인간답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는 의료행위라는 것. 이점을 새로 알게 되었고...

 

하지만... 만약 가난한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저자는 의사이고, 부모도 의사였기에 또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환자들도 그런 의료비를 부담할 수 있었기에 호스피스 케어가 가능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란 의문이 들었다. 가난한 사람도 자신이 이런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그렇지 못함에 씁씁한 마음이 생기고.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야말로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듯이, 이 책 제목은 웰 모탈(well mortal)인데, 이를 웰다잉(well-dying)이라고 해도 좋겠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죽는 사람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따라 남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의 사례와 자기 아버지, 특히 의사였던 아버지가 종양이 생기고 그것을 치료하고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 잘 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사실,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라. 온갖 기기들을 온몸에 꽂고 누워 있는, 의식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중환자실에 오기 전까지 어떤 일을 했고, 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최후를 어떻게 맞고 싶은지 중환자실에서는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생명 연장만을 추구할 뿐이다.

 

그러나 시각을 바꿔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발휘한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그래 적어도 죽을 때 함께 해온 사람들에게 한 마디는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함께 해서 너무 행복했다. 나머지 인생들을 잘살기 바란다 등등, 감사와 축복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종말. 그것이 고종명 아니겠는가.

 

그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함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가 있어야 함을, 그리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함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계도 점차 이 책에서 주장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지 않나 하고, 개인들도 그렇게 죽음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 때임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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