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 아마도 '지층'이라는 말 때문에 그러리라.

 

  시에 등장하는 화자가 살고 있는 곳은 반지하도 아닌 지하, 즉 지층이다. 땅 밑에 있는 방. 그 곳에서 살아가는 화자의 이야기가 시집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니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계단의 끝. 86-87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흔히 계단하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데, 시를 읽으며 이상하게도 계단은 내려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상태. 결국 벼랑이다. 끝이다. 그래서 슬퍼진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아예 지하에 살고 있는, 지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지만, 어디 그러한가. 주인공 중 한 명이 결국 반지하에서 지하로 들어가게 되는 것. 시인의 표현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희망이 있고, 서로를 위로해주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시집을 읽으며 몇몇 시를 보면서 인간 세상의 단절과 다른 존재들의 연결을 생각했다.

 

인간의 세계가 우리를 단절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무덤 사이에서'(42-45쪽)란 시에서 시인은 '내가 아직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 나를 감싸던 신성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라는 것은 '내가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 / 영혼의 풍경들은 심연조차도 푸르게 살아서 / 우물의 지하수에 떠 있는 별빛 같았다'고 시인이 표현하고 있듯 다른 존재와 소통을 하고 연결이 되어 있을 때라는 것이다. 이를 무덤 사이에서 깨닫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죽음으로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 이후에야 연결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이러한 연결이 너무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가 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 연결을 보여주는 역할을 시인이 하고 있다.

 

'불꽃'(145쪽)이란 시다.

 

불꽃

 

  이 광장에 시위가 한창인데 바리케이드 한쪽에서 노인이 신문지를 수의처럼 덮고 잠들어 있다 노숙견 한 마리가 다리를 절룩이며 다가와 수의 바깥으로 삐져나온 노인의 손을 핥는다 노인의 깊게 파인 손등에 내리쬐는 저 불꽃이야말로 세계와 삶에 대한 고요한 항의다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지성사. 2018년 초판 11쇄. 145쪽. 

 

광장,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정작 한 켠에는 소외된, 광장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 그는 죽음에 가까운 상태에 처해 있다. 이런 그에게 개 한 마리가 다가온다. 개와 사람이 연결이 된다.

 

연결이 되는 상태, 이렇게 서로가 연결되어 함께 살아갈 때 우리 삶은 좀더 포근해질 수 있음을 광장에서 커다랗게 외치는 항의가 아니라 이러한 연결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삶에 대한 고요한 항의'라는 표현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단절된 외침이 아니라 서로를 견디게 해주는 이러한 연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 '겨울 아침'(174쪽)이란 시를 읽으면 이런 연결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음을, 다만 우리가 보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광장으로 사람들이 나가는 것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다. 나만이라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라는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기 위해 광장에 모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광장에서도 나만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우리라는 나로 인해 소외된 또다른 존재들이 있음도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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