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
시간이야 늘 같은 속도로 흘러가겠지만, 같은 시간이라도 사람에게는 다 다르게 느껴지니.
세밑 시간과 새해 시간이 그렇다. 정리하는 시간과 시작하는 시간. 되돌아보는 시간과 앞을 보는 시간. 책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 읽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는다. 같은 책이라도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녹색평론 또한 마찬가지다. 창간된 지 이제 30년이 되어 간다. 30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이야기해 왔는데, 어떤 사람은 이제 할 이야기를 다하지 않았느냐고도 한다.
아니다.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지 않는 문제들도 있지만, 새로이 생겨나는 문제들도 있기 때문이다.
생태, 환경 잡지라고 하는 녹색평론에서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인공지능이 생태, 환경 그리고 우리 삶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이제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한때 인간복제에 대해서, 유전자변형에 대해서, 크리스퍼라고 하는 유전자를 자르는 가위 기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삶을 연장하는 문제,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고 싶은 욕망이 이런 기술을 필요로 했다.
곧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 이루어질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인간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었다.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그러나 과연 이것이 이루어졌는가.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인간은 질병이나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는 못했다. 어쩌면 인간이 질병이나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인류는 절멸할지도 모른다. 질병과 죽음이 아닌 자신들 스스로의 파괴로.
한정된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는 존재, 계속 증식되는 존재만 있게 된다면, 결국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 파괴해야 한다. 질병이나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인간끼리의 살륙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물론 우주를 개발해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된다는 발상도 있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계속 살아가면서 증식하는 인간이라면 우주라는 공간도 언젠간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결국 한번 나온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발생한 것은 지속되면서 계속 늘어가기만 한다는 미래가 실현된다면 과연 살기 좋은 세상일까?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연구도 그렇다.
인간이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또 인간이 기피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인공지능이 장착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로봇이 나온다고 해보자. 일은 로봇에 의존하고 인간은 다른 작업을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완벽할까? 과연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딥러닝이라는 학습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가짜 정보들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오히려 가짜 정보들로 학습을 해서 편견을 더 강화하지는 않을까 이런 우려도 있다. 그런 실례로 아마존의 채용면접 인공지능을 든다.
'알고리즘은 인간이 가르쳐주는 것만 학습하지 않고, 인터넷의 광활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학습의 원천이 온갖 편견과 가짜뉴스, 인종차별과 여성폄하로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2014년에 '아마존'은 채용면접 인공지능을(AI)을 도입했지만 여성 취업자들을 차별하는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다. AI가 지난 10여 년간 데이터 패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68쪽)
이런 일도 있다고 하니,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구를 위한 인공지능인지, 왜 우리가 인공지능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 다각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녹색평론에서는 그 점을 지적해주고 있는 것이고.
2020년이 밝았다. 지금 사이가 좋지 않은 일본에서는 올림픽이 열린다. 도쿄에서. 그런데 그곳이 바로 원전폭발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와 가깝다. 아니 도쿄뿐만 아니라 후쿠시마에서도 올림픽 경기를 개최한다고 하니, 이거야 원,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도 아니고.
원전폭발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번 호 두 글을 읽어보면 된다.
시모사와 요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된 도쿄
소노 료타, 나는 도쿄올림픽을 반대한다
모두 직접 체험이 담겨 있는 글이다. 후쿠시마에는 한번도 산 적이 없는 오로지 도쿄에만 살았던 사람에게도 원전 폭발은 남 일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올림픽 경기를 하겠다고? 무모한 건지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그 점에 대해서는 아니 건더센이 쓴 '도쿄올림픽과 핵재앙, 일본정부가 숨기는 진실'에 잘 나타나 있다.
올핌픽이 시작되는 해,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그곳에서 개최하는 것이 옳은지, 참가하는 선수들이나 관람하는 사람들의 건강이 괜찮을지 세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조사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2020년. 인공지능과 도쿄올림픽. 두 개의 화두를 중심으로 논의를 펼쳐나간 170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