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강병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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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허구다. 소설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은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감동을 받는다.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게 먼저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주인공의 삶에 자신의 삶을 대입해 보기도 한다. 감정이입은 물론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잘살게 되기를 바란다. 소설의 결말이 행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들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 속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희망을 실현하려고도 한다. 소설이라는 문학 갈래가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가 이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이 소설과 같이 전개될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에게 그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이게 소설인 줄 아니? 와 같은 말을 한다. 그만큼 소설과 현실은 같지 않음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다.

 

현실과 다름에도 소설은 감동을 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반추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도 한다. 적어도 소설은 반면교사 역할을 한다.

 

이 소설집 역시 그렇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중들이 겪어온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주요 배경은 충청도다. 물론 충청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병 또는 징용으로 끌려가면 외국까지 나가니 말이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충청도 사람들이다.

 

충청도 하면 제일 먼저 말이 느리다는 것이 떠오른다. 느릿느릿한 말투. 하지만 소설은 빠르게 전개된다. 문장도 길지 않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저 사건으로,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충청도와 반대되는 문장 서술이다. 또 소설에서는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다. 학교를 다녀도 고등보통학교 정도에서 그친다. 그렇다면 주인공들은 민중이라고 할 수 있다. 전면에 나서서 자기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사람들.

 

총 세 편의 소설이 묶여 있는데, 시대 순으로 소설이 나열되어 있다. 일제시대, 1960년데, 그리고 정황상 2000년대. (나팔꽃, 한머리, 숨소리)

 

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서 겪는 일, 일제 말에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라는 교육 속에서 그래도 졸업장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학생들. 그럼에도 민족감정은 남아 있어서 조선인을 비하하는 일본 학생을 폭행하기도 하는 학생들. 독립운동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친일을 하지도 않는.

 

주인공은 이런 학교 생활을 거쳐 학병으로 전투에 참여한다. 소련군과의 전투. 탈출. 조선으로 들어와 해방이 된 조국을 맞이하게 되는 그들.

 

얼핏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팔꽃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팔꽃은 해가 있을 때만 피는 꽃 아닌가. 소설의 끝부분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숨어 있다가 일제히 고개를 드러낸 나팔꽃들이 한꺼번에 댕강댕강 떨어질 것 같은 불길함도 가시지 않는다. 완전히 끝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100-101쪽)

 

이렇게 해방이 되어서도 민중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좌우 대립을 거쳐 전쟁을 겪게 된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 박정희 독재가 막 시작될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산업화가 되어가는 그 때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 소소한 일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설에서는 한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린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이 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근대사의 이면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산업화되어 가는 농촌 마을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과정, 딸이라고 해서 차별을 받는 모습,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방식... 여기에 간간이 노근리 학살 사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자신의 말을 잃고 사는 민중들. 여기에 그래도 말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의 누나. 하지만 이 누나가 고등학교에 진학할지는 모른다. 아마, 하지 못했으리라. 딸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억압을 받아야 했던 우리 현대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다고 결말을 내지 않고, 그냥 그렇게.

 

마지막 소설에서는 삼청교육대 사건이 나온다. 아니 학교 폭력 문제라고 해도 좋다. 학생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는 모습을 서술하는 가운데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주먹을 좀 썼다는 아버지. 이 아버지가 삼청교육대 경험을 한 것. 결국 세상이 바뀌어도 민중들은 계속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세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지금은 어떤가? 민주화되었다는 지금 과연 민중들의 삶은 나아졌는가? 민중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혹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답시고, 제 이익을 목청껏 외치는 자들이 여전히 판치고 있지는 않은가.

 

소설을 읽으며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낸 민중들의 삶을 만나며, 지금 우리 삶을, 우리 민중들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소설을 통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 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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