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잡이들의 이야기 보르헤스 전집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외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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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하면 환상적인 소설을 떠올리는데, 이 소설은 환상보다는 사실에 가깝다고, 그것도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소설에 반영하고 있다.

 

읽다 보면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가 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독립전쟁뿐만이 아니라, 독립을 이룬 다음에도 연방주의와 중앙집중주의로 나뉘어 또 서로 싸우고, 독재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받아왔음도 알 수 있다.

 

역사책을 읽지 않아도 이 소설집을 읽다보면 그러한 사실들을 알 수 있는데, 제목을 '칼잡이들의 이야기'라고 붙인 것이 이해가 된다.

 

칼잡이들은 칼을 써야 한다. 쓰지 않고 이기는 칼잡이가 진정한 고수라고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칼잡이들은 칼을 쓴다. 소설에서 결투 장면이 많이 나오고, 칼을 통해서 상대를 죽이는 일들이 다반사다.

 

이 중에 '마가복음'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소설을 읽으면 보르헤스가 사실주의적인 소설을 쓰더라도 환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글을 모르는 가족들에게 마가복음을 읽어주는데, 노아의 방주 부분과 지내고 있는 곳에 홍수가 나는 것, 그리고 그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가 모두를 용서해준다는 말을 듣고 대들보를 뜯어 십자가를 만들어내는 것.

 

카르카의 '유형지에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소설인데, 종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결투를 하거나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내기를 하는 그런 인물들을 만나면서 '칼잡이'라는 말에서 우리나라 '검사'를 떠올리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야말로 불한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교양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이 할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동물을 죽이는 것만큼 쉽게 한다. 그런 칼잡이들이다.

 

반면 우리나라 검사들은 교양인이다. 지성으로 무장한, 세속적인 칼은 쓰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들과 소설 속 인물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말이 된단 생각이 든다.

 

검사(劍士)와 검사(檢事). 한자로야 다르게 표기되지만 한글로는 같지 않나. 하는 일이 비슷하지 않나. 칼로 사람을 베는 것이나 언어라는 판결로 사람을 베는 것이나. 말이 칼이 되기도 하니, 劍士나 檢事나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장기가 사람을 베는 것 아니겠는가. 벤다는 의미는 그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것일 테니 보르헤스가 진짜 칼잡이들을 통해서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구현해 냈다면, 우리나라 검사들이 지내온 한국 현대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검사들이 劍士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교황도 배출했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여 이상하게도 보르헤스의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칼잡이라는 말에서 검사를 떠올리게 되었으니, 우리나라도 과거에서 많이 벗어나 있을 테니... 독재가 판치던 우리나라에서 지식인들은 라틴아메리카 현대사, 혁명을 공부했었다.

 

그만큼 통하는 면이 있었을 것이고, 환상적인 소설로 잘 알려진 보르헤스가 그런 라틴아메리카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소설로 표현하기도 했음을 이 소설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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