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시집 '적막 소리'를 읽다.

 

적막이라면 소리가 없어야 하는데, 적막이 소리를 낸다. 적막은 이미 자신의 내부에 소리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넘쳐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제목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집 곳곳에 나오는 죽음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집에 늙어감과 죽음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시인이 이편보다는 저편을 자꾸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시인도 이제는 세상의 이편보다는 저편이 더 가까운가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인생 한 바퀴를 돌고 더 가고 있는 시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우리는 죽음을 한사코 외면하려 한다. 장례식장이 들어온다고 하면 결사반대를 하고, 장례식장에 결사반대라는 말, 죽음을 무릅쓴다, 죽음을 치르는 곳에서 죽음도 받아들일 정도로 싸움을 하겠다, 이런 형용모순인 투쟁을 하고,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치부하는 나라에서 시집 도처에 나오는 죽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모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고, 아니면 바니타스, 헛되고 헛되다는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그림의 주제들이 이 시집에 되살아난 느낌이다.

 

'적막 소리'와 어울리게 망자가 말을 하기도 한다. 산 자에게...(사별, 그녀가 들은 말 - 94쪽) 그리고 망자에게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또다른 무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무덤들 - 32쪽)

이렇게 우리는 죽음과 늘 함께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리 우리가 부정해도 늘 죽음과 함께 있다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그것이 어쩌면 성숙이라고.

 

'수박 먹는 가족'이라는 시를 보자. 이게 바로 우리 삶이다.

 

수박 먹는 가족

 

  고분군과 인접해 사는 이곳 불로동 사람들은 오히려 담담하다.

  이 오랜 죽음에 대해 별 관심 없다. 다만 여름밤이면 웅성웅성 뭔가 둥글게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지, 이 집 가족들

  만삭 같은 수박을 쪼갠다. 수박 세로줄 무늬가 줄줄이 시퍼렇게 살아나는 밤,

  저 여러 봉분들도 잘라 전부 뒤집어놓고 싶은 밤, 그 수박 속 다 파먹으면 일가족이 타고도 남을 커다란 배가 되겠다. 일가족을 모두 두고 혼자 떠나온 먼 항해,

  뒤집어쓰고 누운 것이 저 봉분들 속 독거다. 바리깡으로, 이 수박 물결무늬로, 최신식으로 얼룩덜룩 벌초해드릴까보다. 참말로 달고 시원한 맛,

  살아 아는 건지 죽어 아는 건지……껍질 안쪽에

  붉게 발린 기억은 별 내용이 없고 다만 수박 먹는 밤,

  흰 달빛 또한 고분군 위에 식칼처럼 환한 밤, 不老,

  불로동 사람들도 예외 없이 늙어가고, 고분군 쪽으로 운동 가고,

 

문인수, 적막 소리. 창비. 2012년. 초판 2쇄. 86쪽. 

 

시가 쉼표로 끝난다. 마침표가 아니다.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죽어간다. 이 시집에서 죽음을 많이 다룬 것은 바로 삶을 다루는 것이다. 둘은 떼어놓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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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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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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