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 - 페미니즘이 발견한 그림 속 진실
조이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을 볼 때 나는 어떤 관점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 책이다. 나만의 관점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 관점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알고 보니 알게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것들을 내면화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 명작이라는 작품들을 보면서, 물론 실제로 보지 못하고 책을 통해서 보지만, 그것들을 보면서도 그림 속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기존에 알려진 것만 보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 것은 아닌지.

 

표지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얼핏 보면 여성의 누드에 뱀이 나온다. 누굴까? 모르고 있었는데, 이책을 읽다보면 이 여성이 릴리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여성이라고 하는데, 주체적인 여성이라고 한다. 어떤 신화에서는 아담의 첫번째 부인인데, 아담이 주도하는 생활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떠난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당당한 존재. 뱀은 무엇인가? 지금은 사탄의 상징이 되었지만, 태고에는 신성한 존재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인간의 원죄를 생각하지 않나? 그만큼 뱀과 여성은 원죄와 연결짓는 일이 많았다. 성경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동양에서도 뱀은 신성하기보다는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존재로 많이 나오니.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여성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여성일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림에서조차도 여성을 남성을 위한 존재로 소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이 책은 다양한 시각에서 그림을 보게 해주는데,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게 만든다. 남성의 시각에서 아름답다 또는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를 책의 뒷부분에 가면 더 잘 알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굴레를 벗어나려 했는지, 미술에서도 남성들의 시각에서 벗어나려 했는지를 특히 5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미술을 보는데 한 가지 시각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데, 작가가 작품을 창조했을 때도 작가에게 영향을 준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 다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 제반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다.

 

책에 나온 것 가운데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남성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점을 반성하게 했던 장면이 있다.

 

베르니니의 작품인 '아폴론과 다프네'

 

에로스 화살의 영향이라고 아폴론은 사랑에 빠지고 다프네는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결국 다프네는 나무로 변했는데, 그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월계관에 얽힌 신화.

 

아폴론 처지에서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로 변했으니 그 사랑을 간직하고자 나뭇잎으로 관을 만들겠지만, 죽어도 아폴론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다프네 처지에서는, 죽어서도 아폴론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얼마나 폭력인가? 단순히 조각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진 수많은 폭력을 생각하면서 이 조각을 볼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서술하는 책은 남성의 폭력이 미술에서 얼마나 많이 나타났는지를,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명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 하나를 더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현대미술에서 전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예술들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회적 편견, 사회적 억압을 까발리고 뒤집기 위해서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은 첫부분부터 심상치 않게 전개된다. 사람들에게 명작 중 명작으로 인정받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펴보면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서 고대 조각들 중에서 남성들의 조각은 나체로, 그것도 성기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는 상태로 만들면서도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음을 생각하라고,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 하면 경기나 광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을 잡아먹기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남성을 적대시 하기만 하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또 다른 성이 함께 서로를 인정하고 살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정 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다름이 그냥 다름인 사회, 그 다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 그래서 탈코르셋이든 코르셋이든 별다른 갈등없이 선택할 수 있는, 남성도, 여성도 또다른 성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참고로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 그렇게 표면에 보이는 것에 갇혀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은 마릴린 먼로(나는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이 친숙한데, 이 책에서는 메릴린 먼로라고 표기한다)에 대한 것.

 

남성의 시선에 자신을 맞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백치미의 원조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먼로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려고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남성 시선에 갇힌 것이 아니라 '대본을 먼저 보고 그 역할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요구를 관철시킨 담대한 배우였다(245-246쪽)고 한다.

 

최근에 살았던 배우에게서도 남성들이 알려고 한 것들만 많이 알려져 있었던 것이 현실이라면 이보다 더 먼 과거의 일들은 더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작품을 볼 때 다양한 관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우리 삶에도 하나가 아니라 다양성이 있음을,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