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생각날까? 윗물이 맑은 적이 있었나? 오히려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도 맑아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윗물은 먼저 더러워진다. 그만큼 더러움에 더 많이 노출된다. 그럼에도 그 더러움들이 아랫물에까지 이르면 아랫물은 견딜 수 없다. 물이 견디지 못한다. 썩어들어가는 물이 된다. 악취를 풍기는 물.

 

  악취를 풍긴다고 다시 아랫물에 책임을 묻는다. 윗물이 가져온 더러움들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아랫물이 견디지 못해 그렇게 썩어들어갔음에도, 윗물은 자신들이 아래로 내려보낸 더러움에 대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왜 너희들은 그렇게 더러운 거야? 왜 악취를 내뿜고 난리야. 빨리 깨끗해져야 해. 우리가 너희들을 깨끗하게 해줄게. 이런 참.

 

조금 있다 싶은 사람들, 재판을 받으면 거의 다 집행유예다. 반성을 잘하고 있단다. 초범에다가 반성까지 하고 집안이 좋으니 이런 사람은 사회에 내놓아도 그닥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그런데 집안이 좋지 않은 사람, 또 노동자들이 법에 걸리면 추상같은 법리 해석이 이루어진다.

 

법조문에 있는 그대로 실형이 선고된다. 그리고 그들은 격리된다. 윗물과 아랫물 일과 같다. 윗물은 아무리 더러워도 아랫물로 그 더러움을 내려보낼 수 있다. 제가 더러워져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다. 오로지 아랫물만이 고스란히 더러움을 뒤집어 쓴다. 그리고 책임도 져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누구 하나 처벌 받지 않았다. 입법부 의원들은 자신들이 윗물이다. 그들이 많은 법은 아래로만 내려간다. 아래로, 아래로, 그래도 힘없는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냥 쓸 수밖에 없다. 아랫물들은. 더이상 내려보낼 곳이 없으므로.

 

시집을 읽으면서 아랫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 삶이 이토록 순수하지만 또 그만큼 힘듦을 느끼게 된다.

 

가령 이 시집에 실린 '어떤 일대기'라는 시를 보라.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다. 여성으로서, 농민-노동자로서의 삶이 이토록 힘든 줄을 이 시를 읽으면 알게 된다. 아랫물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면서 이 땅을 지탱하는지도 알게 된다. 그런데 윗물들은 이런 아랫물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고려한다고, 생각한다고, 그들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다.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꼭 이 시에 나오는 이런 사람들 같다. 더 말해 무엇하리... 손만 아프고, 글을 보는 눈만 아프고,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

 

이런 윗물들... 걷어낼 새로운 방법이 분명 있을텐데... 윗물들이 한사코 가로막고 있으니...

 

     흙

           - 신자유주의 농촌 학교

 

흙을 덥썩 안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흙이 길러낸 아들딸들을 가르치고 있다

 

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라고

흙에서 멀리 떠나는 길만이 희망이라고

 

흙의 종아리에 매질하고 있다

흙의 가슴에 꽝꽝 못질하고 있다

 

배창환, 겨울 가야산, 실천문학사. 2007년 초판 3쇄.  72쪽.

 

이런 사람이 어찌 농촌에 있는 교사만이랴... 서울에는 더 많이 있다.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더러움을 아래로만 보내는 윗물들이 너무도 많다. 아랫물만 탓하는 윗물들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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