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많이 살았던 고장, 통영.

 

  어쩌면 통영이라는 이름은 통제영이었으니, 예술보다는 군사 쪽으로 더 가까워야 할 것 같은데, 그 아름다운 바다에,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나왔는지.

 

  군사 요충지가 아니라 자연을 닮은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곳, 통영. 그런 통영을 노래한 시집이 바로 강희근의 "새벽 통영"이다.

 

  통영 사람들, 통영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했는데... 이 시집에는 꼭 통영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 중에 통영 사람에 관한 시. 시에 나오는 한 사람(? 사람이라고 추측을 하는데,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아, 지식의 짧음이여) 빼고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들이다.

 

  통영에 오면


통영에 오면
유난히 유년이 많이 돌아다닌다
남망산 밑 햇볕 곁으로 초정의 유년이
이름표 달고 지나간다

부둣가로 지나가면 싼판으로 드는 청마의
유년, 코흘리개 까까머리가 독 한 점 없이 말갛다

대교쯤 오면
민머리 자주 쓰다듬으며 비너스호 지나가는 것
바라보는
춘수의 유년이 눈썹에 걸린다

그는 어릴 때부터
머리 빡빡 민 샤갈의 유년 같은 것에,
샤갈의 머리에 묻어내리는 눈발 같은 것에
발등이 잡혀

환상으로 걸어다녔다

바람부는 오늘은 환상이 꽃잎처럼 쓸려다닌다
대교를 지나고
유년도 더 이상 돌아볼 유년이 없다
여겨질 때
경리의 유년이 폴짝 폴짝 여치처럼 나타난다

경리뿐인가
동랑의 유년이 소 한 마리 몰고 느긋 느긋 따르고
두동의 유년이 소 한 마리 뒤에 다소곳이 따른다

통영에 오면
유난히 유년이 많이 돌아다닌다
유년이 아니라면 통제영 안골목이나 좁은 길
우체통 앞이 영 늙어 보일 것이다

중앙통으로 흐르는 간선도로
신호등까지 깜박거리고 막히면 오장이
육부가 다 쇠한,
지팡이 짚는 늙은이로 보일 것이다

 영판 늙은이로 보일 것이다

 

강희근, 새벽 통영, 경남. 2010년. 20-21쪽.

 

순서대로 하면 초정은 김상옥,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그 사람. 학창시절에 김상옥이 쓴 시조 "사향(思鄕)"을 배웠는데, 그가 통영 출신임을 이 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하긴 학창시절에 작가들의 고향에 대해서 배우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

 

자연과 사람이 동화될 수 있음을, 그 당시에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어려운 말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었으니.

 

다음은 청마다. 유치환. 깃발이라는 시. 학생 때 꼭 배운 시다. 물론 그의 시 중에서 바위, 행복, 그리움, 생명의 서 등등 생명파라고 해 많이도 배웠지. 그 역시 통영 출신이라고 하니..

 

다음 시인은 김춘수다. "꽃"이라는 시로 너무도 잘 알려진, 그가 쓴 시 중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도 있는데, 이 시에서는 그것을 짚어주고 있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청마와 춘수'라는 시를 보면 청마의 결혼식에 김춘수가 화동(花童) 노릇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아, 청마가 결혼식을 올릴 때 / 올리며 인생을 시작할 때 / 유치원생 춘수가 화동이 되어 꽃을 바친 것 / 통영에 가면 / 아는 사람은 다 안다 - 강희근, '청마와 춘수' 5연)

 

춘수에 이어 나오는 작가는 박경리다. [토지]의 작가.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좋은 작품을 많이 낸 작가. 후배들이 마음 편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작가.

 

이 박경리에 이어 동랑이 나오는데, 동랑은 청마의 형이다. 유치진. 우리나라 근대 연극을 주동한 사람. 그러니 그가 나오지 않으면 섭하겠지. 동랑에 이어 두동이라고 나오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이들과 더불어 통영하면 기억할 사람이 음악 쪽에서는 윤이상, 그리고 미술 쪽에서는 전혁림('통영대교'란 시에 전화백이라고 등장한다)이다. 또 통영 출신은 아니지만 통영에서 지냈던 사람, 이중섭도 있고. (시 - 이중섭, 또는 26-27쪽)

 

이렇게 시집을 통해서 통영을 다시 생각하고, 통영과 관련된 예술인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게 된다.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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