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시문학상 작품집을 읽다가 시 한 편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소월이 애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를 썼다고만 알면 안 되는데...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소월이 어찌 사랑노래만 했겠는가.

 

  사랑은 바로 남녀간에도 일어나지만 민족에 대해서도, 국토에 대해서도, 또 함께 살아가는 민중에 대해서도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소월의 시를 어느 하나로 국한해서는 안된다.

 

  소월시문학상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시들, 수많은 시인 가운데 매해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수상작들이 그때마다 다양한 시적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런 작품집의 경우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수상작보다는 다른 작품이 마음에 와닿는 경우도 많으니... 이번 작품집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시들이 자리잡을 틈이 없다는, 오로지 자리를 잡지 못할 상처가 되는 말들만이 판치는 세상이니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농담을 한다.

 

시가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시를 많이 읽는 사람은 나빠질 수가 없다고. 시를 읽지 않는 사회 너무도 삭막한 사회라고.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에 시를 세 편 이상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암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한 명도 없다고 하면 그것이 농담이겠지.

 

우리나라 기자들 중에 시를 세 편 이상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암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없다고 하면 그것이 농담이겠지. 그래도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자신들이 지식인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사람들이니.

 

우리나라 재벌들 중에, 장관들 중에 시 세 편을 언제고 암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겠지. 없다고 하면 농담이 되겠지. 재벌은 경제 총수인데, 경제 총수라고 하면 돈벌레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읽고 시대를 앞서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

 

장관이라고 하면 행정부를 이루는 핵심들인데, 정부의 대표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나라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시 세 편도 암송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 그것보다 심한 농담이 어디 있겠는가.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 농담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있다고 하는 것이 모두 농담이라면, 이런 끔찍한 일이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시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고, 시를 외우면 입시에도 돈에도 도움이 안 되는 짓이라고 핀잔을 받을테니... 하, 참.

 

이 작품집에 있는 이문재 시인의 '농담'이란 시를 본다.

 

농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제15회 2001년도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김혜순, 잘 익은 사과(외), 문학사상사에서.

이문재, 농담. 124쪽.

 

누군가 쇠를 계속 두드리고 있다. 강한 종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기 위해. 쇠를 두드리고 두드리고, 그래서 쇠가 아름다운 소리를, 깨지지 않고 낼 수 있게 아주 강하게 두드린다. 사정없이. 전후 살피지도 않고.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하는데, 이들은 강해지라고 치는 것이 아니라 깨뜨리기 위해서 친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깨뜨린 종이 어디 한둘 이어야 말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쇠가 깨지지 않고 종이 되어, 강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되면 그때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내가 두드린 말들, 모두 농담이었어. 당신을 위해서 그랬던 거야!!!

 

이런 이 앞에 쓴 글들이 모두 농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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