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의 자장가 - 내 아버지 최인훈과 함께했던 날들
최윤경 지음, 이은규 그림 / 삼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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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믿음을 주는 작가가 있다. 이유도 없이 그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면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게 하는 작가,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읽지도 못하고, 내용을 잘 이해도 하지 못하지만 그냥 마음에 들어하는 작가가 있다. 내게 그런 작가는 바로 최인훈이다.

 

젊은 시절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광장"보다도 "가면고"에 더 끌리기도 했고, "라울전"을 읽으며 종교적 깨달음과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고, "총독의 소리"를 읽으며 우리는 일본을 완전히 극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또 "태풍"을 읽으며 일제시대가 조금 더 길어졌더라면 어쨌을까 하는 위기의식도, 그의 장편 "화두"를 읽으며 최인훈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많은 작품들, 또 그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읽을수록 새로운 것을 찾아내게 하는 작가였다. 작년에 세상을 떠서 이제 그의 새로운 작품은 읽을 수가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딸이 아빠인 최인훈에 관한 글을 썼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최인훈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정 생활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서 최인훈에 대해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다.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여전히 이 문구가 삭제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이 책이 많이 읽히면 이 책에 있는 내용이 추가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최인훈은 생활이 거의 베일에 싸여 있는 사람,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고, 예전에는 강의라도 나갔지만 정년퇴임 후 요즘은 그마저도 무소식이라고 《나무위키》에 적혀 있다. (272쪽)

 

《나무위키》에는 뒤에 몇 문장이 더 있다.

 

특히 최인훈의 가족같은 경우는 언론에 공개된 적이 아예 없다시피한 수준. 서울예대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교수님 A같은 느낌이었다 카더라. 고. 그러니 이 책이 나온 지금에는 뒷 얘기에 이어 많은 것들이 덧붙여질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작가로서 최인훈은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본 딸이 아버지에 대해서, 아버지와의 일을 쓴 것도 의미가 있다.

 

읽으면서 최인훈이라는 작가를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어쩌면 글과 삶이 일치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자식들 처지에서는 참 힘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 책에 나타난 아버지 최인훈의 모습은 딸에게 너무도 관심이 많은 아버지였다는 생각을 한다.

 

딸에게 거는 기대도 있었겠고... 자신이 쓴 소설을 가족들이 읽게 했다는 것, 함께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또 가족의 일에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도 있었다는 것 등등 최인훈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알게 되어 좋았다. 

 

이 일화를 너무도 잘 드러낸 글이 이 책에 실려 있는 글 중에 '크리스마스 캐럴'(128-134쪽)이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같은 글이지만, 아버지 최인훈의 모습, 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기 소설을 통해서 하는 작가로서의 최인훈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책의 끝부분에 손녀가 그린 최인훈의 초상화가 있다. 그만큼 그는 손녀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다고 하는데...

 

  손녀가 벌을 세우면 손 들고 벌 서면서도 한없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는 다정한 할아버지의 모습.

 

  자식들을 키울 때는 책임감이 있었거든. 야단도 쳐야 하고. 손녀들은 예뻐만 하면 되지. ... 할아버지는 그냥 예뻐만 하면 되니까. 얼마나 좋으냐. 최고지. (194쪽)

 

  이렇게 말하는 할아버지 최인훈. 그는 자신의 작품을 손녀들을 보듯이 하지 않고 아마도 자식들을 키우듯이 했을 것이다. 책임감이 있는. 그래서 자신의 작품이라도 야단을 쳐야 하는.

 

  "광장"을 여러 차례 개작을 한 이유도 아마 그러한 이유였으리라. 자신의 자식이었으니까.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랐으니까.

 

이렇게 최인훈은 작품이라는 많은 자식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작품을 통해서 그를 만나야 한다.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삶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최인훈이 세상을 뜬 지 이제 한 해가 넘어간다. 우리는 최인훈 작품을 그가 손녀를 대하듯이 대하면 될 것 같다.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소설 속 삶에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것들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딸이 본 아버지 최인훈,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최인훈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소중한 책이다.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요즘, 최인훈이 쓴 "총독의 소리"와 "주석의 소리"를 다시금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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