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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모래바람 - 최경주 연작소설
최경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9년 7월
평점 :
중동에서 있었던 주바일 폭동사건(폭동사건이라고 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항의 사건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을 주요 사건으로, 김대위란 인물을 주요 인물로 삼아 전개하는 연작 소설이다.
'김대위, 조선소 소요, 거간꾼들, 여우 가죽, 어느 전기공 이야기, 사막의 모래바람,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이렇게 일곱 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소설을 읽으면 나이 든 김대위의 회상으로 시작하여, 다시 현실의 김대위로 끝난다.
각 편이 독립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읽으면 연결이 된다.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기도 하고, 배경이 중동을 중심으로 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김대위라고 하여 지식인이 주인공일 것 같지만, 김대위는 서술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주인공들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 가혹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을 하는,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 억압을 견뎌내야 했던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삶이 미화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참하게 그려지지도 않고, 딱 그렇게 노동자들이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형상화되어 있다.
사우디에 가서도 술을 만들어 먹고 - 아랍은 금주다 - 고된 노동이 끝난 뒤에 많지도 않은 월급을 가지고도 화투판을 벌이고, 들개도 잡아먹는 그런 모습들, 열악한 환경, 관리자들의 횡포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 간다.
그런 삶들 속에서 더 견딜 수 없을 때 드디어 폭발하는 것이다. 이 폭발이 바로 주바일 폭동 사건이고, 이 사건으로 인해 강제추방되는 노동자들과 관리직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강제추방이라고 해도 노동자들은 귀국하자마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당하게 되지만, 관리자들은 보직 이동만 할 뿐이다. 결과까지도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데... 소설에서 이 점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한때 중동신화를 들먹이고 대통령이 된 자가 있고,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자가 있다. 회장과 사장을 엮임했던 그들... 소설 속에서 돈에서만은 회장이 양보를 안 할 거라고 할 정도로 노동자들의 임금에, 그들의 처우 개선에, 노동 환경 개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
그 회장에 그 사장이라고 젊은 나이에 사장이 되어 온갖 무리한 공사를 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 소설이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각자 사연이 있지만, 이들은 아무리 가혹한 노동 환경이라도 인간적인 대우가 이루어진다면 관리직들을 적으로 돌리거나 폭동 같은 것을 일으키지 않는다.
인간 이하의 상황이었기에, 인간임을 알리는 소리를 내는 것 뿐이었다. 김대위가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 베트남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와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노동조건은 가혹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들, 두번째 소설에 조선소가 나오는데 역시 노동자들의 항의가 나온다.
베트남 - 국내 - 중동으로 이어지는 장소의 바뀜. 그러나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어디서나 똑같다. 그래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는 장소는 다르지만 모두 우리나라 노동자들이지만.
그런데... 이 항의는 소설이 전개되는 몇 년에 걸쳐 나오지만 노동조합이 있어야 해라는 말만 나오지, 노동조합을 만드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군인이 정권을 잡고 긴급조치라는 명목으로 반대하는 소리를 억압하고,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던 그 엄혹한 시대에 노동조합은 멀고 먼 이야기였다.
1970년대를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시작했는데, 그런 불태움이 70년대 내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기껏 노동조합을 결성해도 곧바로 들어오는 탄압과 블랙리스트...
그러니 소설 속에서 일거리를 찾아 다니는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들은 그때 그때 상황 속에서 대표자를 뽑고, 이들의 협상으로 투쟁을 마무리한다. 그 마무리는 늘 자본측에, 권력측에 유리한 협상이 되었고, 대표자들은 처벌을 받고 현장에서 유리되고 마는 현상이 반복된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정당한 단체인 노동조합이 없는 상황이 얼마나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베트남이나 중동만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노동조합은 제대로 결성되기 힘들었으며, 결성되었어도 온갖 탄압을 이겨내야만 했다.
이런 노동조합운동의 전사(前史)로 이 소설을 읽어도 된다. 힘들게 힘들게 자기들의 권리, 생존권을 지켜나갔던 노동자들이 있었음에 그나마 이정도 되는 노동 환경을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하는데... 딱 여기까지다. 이런 말은 정규직들에게만 - 현재는 얼마 되지도 않는 정규직들에게만 - 해당하는 말이다.
비정규직들은 이 소설에 나오는 노동자들과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다. 이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들에게 이 소설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남들이 아닐 것이다.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
1970년대 일어났던 먼 과거, 지금은 웃으며 그땐 그랬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지금도 끈질지게 계속되고 있는 노동 착취의 현장인 것이다. 그 모습을 소설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소설은 노동조합이 건설되어 환경이 많이 개선되어 있는 것으로 끝나지만...
'수백 수천 명이 작업하는 대규모 현장에는 건설노동조합에서 걸어놓은 현수막이 펄럭이고, 긴 스피커를 얹어놓은 노동조합 승합차가 현장을 누볐다.' (380-381쪽)
이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조합으로, 그들의 권리까지 지켜줄 수 있을 때 더 이 소설이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우리 노동환경은 197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곳이 많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마음 아프게 읽었다.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 소설에 나타난 주바일에서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지 생각하면서... 여전히 공고한 자본의 위력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고맙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