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비늘들이 모여 물고기를 감싼다. 비늘 한 조각, 한 조각이 모두 물고기다. 어느 하나만 물고기라 할 수가 없지만 어느 하나도 물고기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게 시다.

 

  2016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읽었다. 수많은 시들의 비늘이 모여 현대시를 구성하고 있다. 이게 현대시다. 한 해 나온 다양한 경향의 시들을 모아놓은 이 수상시집이.

 

  비늘 한 조각

 

  심사위원인 김기택의 말.

 

  주목받는 시인만 계속 주목받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뛰어난 시인, 우수한 작품이라도 목소리가 낮으면 쉽게 묻혀버리기 쉽다. 문학상이 가진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이런 숨은 보물을 찾아 주목을 받도록 함으로써 우리 시 문학을 보다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고 본다. (180쪽)

 

  또 다른 비늘 한 조각

 

  수상 시인인 김경후의 말.

 

열심히 쓰겠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겠습니다. 텅 빈 백지처럼. (183쪽)

 

문학을 이루는 많은 비늘들을 우열로 나눌 수는 없다. 비늘들은 그들대로 다 존재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의미를 발견해주는 것, 그것이 문학상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시의 존재를 지탱해주는 존재는 바로 독자다. 독자가 읽어야 시가 존재할 수 있다. 시인이 시에 의미를 너무 부여하려 해서는 안된다. 시인의 말처럼 텅 빈 백지처럼 시를 써야 한다. 그 백지를 채우는 것.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독자 혼자는 백지를 채우기 힘들다. 이때 독자와 시를 연결해주는 중매자, 소위 매파 역할을 평론가, 문학상이 해야 한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 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말이 있듯이 쉽지 않은 일이다.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사람이 남들을 연결해 준다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 문학평론가들 또 문학상 심사위원들 이 중매쟁이보다 더한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 뺨이 석 대가 아니라 독자들을 시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기껏 공들여 낸 백지에 평론가들이나 심사위원이 이상한 무늬를 만들어내어 독자에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년도 수상시인은 김경후라고 한다. 잉어가죽구두외 5편이 수상작으로 결정이 되었다. 앞에서 비늘 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잉어가죽구두'에 나오는 이 낱말 때문이다.

 

우리 인생이 비늘들로 중첩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리고 수많은 비늘들이 살아가면서 떨어져 나갔지만, 그럼에도 아직 우리를 감싸고 있는 비늘들이 남아 있다는 생각. 어쩌면 시도 남아 있는 비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시를 읽어보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잉어가죽구두

 

너덜대는 붉은 가슴지느러미

수억 년 동안 끝나지 않는

오늘이란 비늘

떨어뜨리는

노을

아래

기우뚱

여자는 한쪽 발을 벗은 채

깨진 보도블록 틈에 박힌 구두굽을 잡고 쪼그려 있다

 

2016현대문학상수상시집. 김경후, 잉어가죽구두. 현대문학. 2015년. 15쪽. 

 

단순하게 이 시를 그림으로 그려본다. 해가 떨어지려 하는 노을이 번진 도시 길가에 한 여자가 구두굽이 보도블록 사이에 끼인채 주저앉아 있다.

 

아주 단순한 그림이다. 그런데 '너덜대는'이라는 표현, 흔들리는이 아니라 너덜대는이라는 표현은 저녁까지의 삶이 결코 평안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루의 저녁이라고 해도 좋고,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이라고 해도 좋다.

 

설핏 해가 넘어갈 때 이제 휴식을 취해야 할 때 집으로 가는 길 편안한 마음으로 가야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하여 몸은 '기우뚱'해질 수밖에 없다. 걸음을 막는 무엇, 깨진 보도블록이 나오고, 그 사이에 구두굽이 낀다. 집으로 가는 길조차도 이렇듯 험난하다. 그러니 쪼그려 앉을 수밖에.

 

어찌보면 평온한 그림일 수도 있는 이 장면이 신산한 삶을, 그것도 여성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짠한 마음이 일어난다.

 

잉어가죽구두, 세상에 잉어와 가죽이 연결되는 경우는 없다. 누가 물고기 껍질을 가죽이라고 하는가. 약하디 약한 껍질인데... 이것으로 구두를 만든다. 언제고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스스로 원한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신어야 했던 신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생활을 가리키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직면해 잠시 주저하고 있는 모습. 수많은 비늘들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일상의 어려움 아닐까.

 

한참 시에 대해 생각하다 잉어가죽구두를 인어가죽구두로 잘못 생각하기도 했다. 인어가죽구두는 결국 인어의 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 왕자에게 가기 위해 목소리를 잃고 발을 얻은 인어공주. 그렇지만 왕자는 멀어져만 가고 왕자에게 가기 위해 얻은 발로도 왕자에게 가지 못하는 인어공주.

 

보도블록에 끼인 구두에서 그런 왕자를 찾아오게 만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니라 목소리를 잃게 만든 인어공주의 발을 생각한다면 지나친 곡해일까?

 

곡해라도 좋다. 시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비늘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에서 여성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진다. 그것을 한 편의 그림처럼 표현해내고 있는 시라는 생각.

 

잉어가 출세와 다산과 재물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 가죽구두를 신었다는 것은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인데, 승승장구가 아니라 어느 순간 탁 하고 걸려 있는 상태. 세속적인 성공과 정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잉어가죽구두에서 인어발을 생각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니, 내 삶을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비늘들을 생각한다. 편안했든, 힘들었든, 행복했든, 고통스러웠든 그 많은 과정들이 하나하나 모여 비늘들이 되어 나를 감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2016현대문학상수상시집이다. 뱀발을 그리자면 다른 시들도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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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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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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