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건강한 위험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글이 실렸다. 학교라는 공간과 위험이라는 말, 여기에 건강한이라는 말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학교는 우선 위험을 제거해야 하는 공간이고, 위험이라는 말에는 건강하지 않다는 말이 이미 들어 있으니, 학교와 건강한과 위험이 한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도 이상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상하면 안된다. 학교는 미래를 살아갈 세대를 가르치는 곳, 아니 그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미래가 어디 탄탄대로로만 연결되어 있던가.

 

세상이 온실 속이던가. 누군가가 끝까지 다 보호해주는 공간이던가. 그렇지 않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는 안전해야 하는가? 학교에서 위험은 꼭 사라져야 하는가? 아니다. 위험이 사라진 학교는 더 위험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사고를 막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모든 교육활동에 안전교육이 실시된다. 실제로 안전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안전교육은 혹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환으로만 실시된다.

 

학교는 책임이 없다. 교사는 책임이 없다는 절차만은 꼭 거친다. 왜냐? 아이들이 다치면 모든 책임을 학교, 교사에게 묻는 풍토가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활동을 하다보면 다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지 않는다. 안전교육을 했느냐, 임장지도를 했느냐, 사후 처리는 어떻게 하느냐 등등으로, 사고가 나면 다른 교육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뒷처리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니 건강한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교에 건강한 위험은 없다. 오로지 사고만 있을 뿐이다. 이 대담에는 놀이전문가와 서울시교육감도 참여하고 있는데, 공허한 울림으로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청은 절대로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학교에서 처리하길 바라고, 또 사고가 일어난 학교에 주의 조치를 할 뿐, 사고가 교육활동에 따를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결국 학교든 교사든, 교육청이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갖추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학교에서 건강한 위험을 배울 수 있을까'란 말은 너무도 공허할 뿐이다. 그럼에도 민들레에서 이런 좌담을 연 이유는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앤절라 핸스컴이 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란 글을 보면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많이 하지 않은 까닭에 신체능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당연하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이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사고가 날까봐 두려워서. 어떻게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신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아이들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아프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 그들은 성장통을 겪고 있고, 그것은 성장에 꼭 필요한 일일텐데, 그 성장통을 '병'이라는 이름으로 낙인 찍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중2병 환자일까,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만나는 길, 학교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우울'이란 글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아이들이 지내는 곳, 학교, 그곳이 절대로 건강한 공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 이런 학교의 모습은 너무도 위험하다.

 

위험을 피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위험한 공간이 바로 학교다. 위험을 회피해서 더 위험해진 학교... 아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할 수 없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 없는 공간이 학교가 되니, 점점 더 위험해지는 것이 학교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는 건강한 위험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해 볼 수 있는 위험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교다. 그게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로지 대학입시라는 결승점을 향해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부모도, 교사도, 그리고 사회의 모든 기성세대들도.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호에 권재원이 쓴 '당신은 꼰대입니까?'를 읽어 보라.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꼰대들이 있는지.

 

위험을 제거해준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는 그런 '꼰대들 천국'이 우리 사회 아닌지... 나 역시 그런 꼰대들 중 한 사람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민들레 124호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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