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요즘 시의 경향과 좀 다른 방향으로, 전혀 어렵지 않은 시를 삶창에서 내고 있다.

 

  노동현장 또는 다른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쓰는 것.

 

  그것은 글자에 매인 시가 아니라 삶을 드러내는 시일 수밖에 없고, 그런 시가 이해하기 어려워서는 안 된다.

 

  이철산의 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로 살아온 그가 자신이 느낀 것을 시로 풀어내고 있는데... 시인 이철산의 삶은 '그때 내 시의 주제는'이라는 시에 잘 나와 있다.

 

  잘 읽힘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 오로지 책 속에서만 길을 찾았던 사람.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 내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딴 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민중들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정치가들처럼, 어쩌면 저명하고 고명하신 비평가들은 시적 표현이 많이 떨어지는 시라는 평가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를 보자. 강철에 빗대어 표현한 시.

 

강철은

 

골목 어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강철은 고철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

위험하다고 말하는가

수많은 벼림 속에서 비로소 달구어져 빛나는

강철의 기억 속에는 망가지고 부러진 채

무너진 자신조차 숨길 수 없는

고철의 질긴 생명이 숨어 있다 되살아 있다

부끄러움을 녹여내는 아픔 속에서

달구어질수록 뜨거워질수록

고철의 쓰라린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

패배 속에서 슬픔의 언저리에서

무너지고 쓰러지고 비로소 지키는 사랑

강철은 아름답다

 

이철산, 강철의 기억. 삶창. 2019년. 56쪽.

 

고철의 기억을 잃어버린 강철은 오히려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강철이 강철인 이유는 바로 '고철의 쓰라린 추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철의 기억을 잃어버린 강철, 그런 강철과 같은 사람이 있다.

 

시인은 그런 사람을 시집 곳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기억을 잃은 강철들이 너무 많은지도 모른다.

 

'육교 공포증'이란 시에는 '그는 정권이 바뀌자 재빠르게 자신 출두해 죗값으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노동자에게 배신당했다고 하소연하는 그는 노동연구소 간판을 내걸었다' (68쪽. 육교 공포증 부분)고 표현되는 사람이 나온다.

 

이 사람은 '똥개 유감'이라는 시에 '일하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지 않고 / 권력에 옭히고 돈에 꾀여 날뛰는 병 / 침을 질질 흘리고 눈이 뒤집힌 사람들' (54-55쪽. 똥개 유감 부분)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어떤 시위'란 시에서 '몇몇은 공장을 서성이다 시위대를 서성이다 어느 순간 노동자를 위하여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어쩌고 국회의원이 되고 교수 자리 차지하더라 하루 여덟시간 일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오늘도 공장을 멈추는데 삼십 년 노동을 해도 하루살이인 노동자들에게 노동 귀족 어쩌고 국가경쟁력 어쩌고 그만하라 자제하라 희생하라 게거품 문다'(34쪽. 어떤 시위 부분)고 표현되기도 한다.

 

모두들 고철의 기억을 잃은 강철인 것이다. 이런 일이 왜 생길까.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거리, 거리가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 되고, 그 차별이 고철의 기억을 지닌 강철과 고철의 기억을 잃은 강철로 사이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차별

 

하루 8시간 일해도 먹고사는 사람

하루 8시간 일하면 먹고살 수 없는 사람

 

먹고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먹고살기 힘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사람

평생을 죽도록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사람

 

일하지 않는 사람과 일만 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

 

이철산, 강철의 기억. 삶창. 2019년. 15쪽. 

 

이 사이가 메워지고 있는가? 답이 긍정이면 좋으련만 사이는 더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이 사이가, 차별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이를 메우고, 사이를 좁혀야 하는데...

 

그래서 시인은 이런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시인의 말에 시인의 마음이 절절하게 나와 있다.

 

모두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모두가 일하지 못할 때 일을 쉴 수 있는

모두가 일하는 동안 평등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나는 가장 편협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인의 말. 5쪽.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집이다.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할 것이 많았다. 고맙다. 나 역시 고철의 기억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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