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구했다. 새시집은 일반 서점에서 구할 수 있지만, 그것도 많지도 않지만, 오래된 시집은 아주 많이 팔리는 것 말고는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다.
발품을 팔아야 한다. 시가 내게로 왔다가 아니라 시집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담아두었던 시집, 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집을 얻을 수 있다.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도 가끔 헌책방에 나온다. 1회수상집을 구했고, 이번엔 7회 수상집이다. 수상 시인은 이문재.
이문재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읽었으니, 기대를 하고 읽어본다. 또 수상시집은 수상 시인의 작품 말고도 여러 시인들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기에 다른 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참에 새로운 시인 이름을 발견하고, 그 시인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리움, 어쩌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를 보았다. 푸른 곰팡이. 곰팡이 자체가 오래 묵혀두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즉 오래도록 관심을 두지 않아 손길이 닿지 않아 생기는 것이 바로 곰팡이일텐데... 이런 푸른 곰팡이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 했더니, 우체통이다. 우체통. 예전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와 다른 사람을 이어주던 존재.
이제는 과거로 흘러가 점점 우리 눈에서 사라져 간, 길거리에 빨갛게 자기를 드러내던 우체통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편지를 써도 넣을 우체통을 찾기가 힘들어 편지를 쓰지 않는다.
이메일로 보내면, 문자로 보내면 아니면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등 보내자마자 읽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번 쓰고 부치면 며칠이 걸리는 편지는 비효율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비효율성이 바로 우리 인간을 설레게 하지 않았던가. 편지를 보내고 다시 편지를 받게 되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음은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담고 있었던가.
아직 닿지 않은 편지, 오지 않은 편지를 기다리며 내 마음을,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그런 기다림의 과정이 이제는 사라져 가고 있으니...
시를 보자.
푸른 곰팡이
- 산책시1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읽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제 7회, 이문재 물의 결가부좌. 동학사. 2007년. 43쪽.
그런 마음을 잃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로 빨간색을 칠했지만, 그 경고는 우리들에게 와닿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하고, 아예 경고판을 치워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빨리빨리도 이런 빨리빨리가 없다.
소식이 닿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그 과정을 생략해버린, 수많은 이야기들과 감정들을 묻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 요즘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
한데, 이 수상시집에 '읽어버린'이라고 되어 있는데...다른 곳을 찾아보면 '잃어버린'으로 되어 있다. 어감으로도 '잃어버린'이 더 어울 것 같은데... 나중에 시간이 나면 시집 "산책시편"을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