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가 만든 조각상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힘들게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중력의 법칙으로 땅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있어, 걷는 모습이 안정적인 조각들과 달리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조각들은 땅보다는 하늘을 추구하는 듯, 길다란 다리에 작은 발이 땅에 서 있는 것이 불안하다는 인상을 준다.

 

  삶도 이처럼 위태위태하겠지. 하루하루를 이렇듯 불안하게, 간신히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조각들이었다.

 

  이런 자코메티의 작품과 연관되는 시들을 모아 시집을 냈다. 최승호 시인의 시집이다.

 

최승호 시인의 시가 좀 괴기스러운 데가 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서 종종 읽곤 했었는데...

 

자코메티와 늙은 마네킹이라는 제목이 주는 불안정함이 이 시집을 읽게 만들었다. 시집을 읽다가 그전에 읽은 많은 시들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시집 곳곳에 있는 자코메티의 작품과 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에 우리 일상을 노래하고 있는 시 '새장 같은 얼굴을 향하여'  

 

 새장 같은 얼굴을 향하여

 

어느 날의 하루는 별 기쁨도 보람도 없이

다만 밥 먹기 위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저녁엔

여물통에 머리를 떨군 소가 보이고

달이 떠도 시큰둥한 달이 뜬다

 

지난 한 해는 바쁘기만 했지

얼마나 가난하게 지나갔던가

정말 볼품없는 돼지해였다

시시한 하루에

똑같은 하루가 덧보태져

초라한 달이 되고

어두운 해가 되고

참 시큰둥하고 따분하게 살았다

 

놀라울 것 없는 이 평범한 삶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빈 새장 같은 죽음의 얼굴은

이빨에 앵무새 깃털을 문 채

웃고 있는데

 

최승호, 자코메티와 늙은 마네킹. 뿔. 2008년. 76쪽.

 

우리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 삶은 평범하다. 이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평범하지 않은 우리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죽음을 발견한다. 죽음이 마치 그때 처음 찾아온 것처럼.

 

새장 안에서 살아가는 새처럼 우리는 죽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그러니 평범하지 않은 하루, 따분한 하루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마냥 따분하기만 한 삶이라면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위태로운 걸음을 걷지도 않았으리라. 따분한 삶을 깨닫는 순간, 삶은 휘청거리게 된다.

 

이 휘청거림이 따분한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휘청거려야 한다. 늘상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하루일지라도 다른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삶을 살펴야 한다.

 

삶을 살피는 일이 바로 삶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삶은 결코 따분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비어야 할 새장에 무엇을 남겨야 할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시집 말미에 있는 정끝별의 '춘천, 물의 자서전을 읽다'라는 글에서 왜 시인의 시에 죽음이 이렇듯 많이 등장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친했던 친구들의 죽음을 너무도 일찍 만나지 않았던가. 그렇게 살아온 삶 자체가 자코메티가 만든 조각상이 걸어가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시가 더 절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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